"볼 수 없기에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라디오에는 온통 소리뿐이다.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맛도 볼 수 없다. 게다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라디오만이 갖는 매력이고, 또 속속 생겨나는 경쟁매체로 직면했던 '위기론' 속에서도 지금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라디오는 상상력의 매체죠. 보여주는 것이 없다보니 청취자들은 DJ가 전하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다양한 그림을 그리게 되죠."
TBC 편성제작본부 FM팀 박원달(40) PD도 그런 매력에 빠져 라디오를 택했다.
그는 당초 광고기획(AE)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었다. 그러나 내심 최종적인 제작물을 만들어내는 PD에 마음이 끌렸다. "남의 떡이 커 보이더라구요." 자기 손으로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전업과 전직을 하게 했다. 서울생활을 접고 1997년 TBC 라디오 개국 때 자리를 옮기면서 라디오 PD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죠?" 그가 뜸금없이 질문을 던지더니 "영상 매체는 한 두가지의 사례만 보여줄 수 있지만 라디오는 청취자 모두에게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여행을 떠나게 하죠."
'왜' 그가 소리로 세상을 전하는 라디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는지를 설명했다.
"새벽 2시에 일과 관련해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기꺼이 달려나갈 수 있다면 그 일이야말로 천직이래요. 저 또한 기쁘게 달려나갈 준비가 됐으니 진정으로 하고 싶은 제 일을 찾은 거죠."
그는 최근 들어 "축하한다."는 주위의 인사말에 겸연쩍은 화답을 하느라 바쁘다. 지난 해말 방송됐던 '라디오 뮤지컬, 자유학교'가 얼마전 발표된 한국방송협회 주관 한국방송대상 저널리즘 분야에서 지역다큐라디오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했기 때문.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의 이달의 PD상(71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실험정신상, 방송위원회의 2006년 1월 이달의 좋은프로그램, 방송문화진흥회의 방송문화진흥회 공익프로그램상 대상에 이어 올해만 5번 째 들려온 기분 좋은 소식이다.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은 지난해 총 23부작으로 제작 방송된 가족사랑 캠페인 '사랑한다고 말합시다.'에 이은 2연패.
그에게 상복을 안겨준 '라디오 뮤지컬, 자유학교'는 라디오의 틀을 깨며, 또 라디오만의 매력을 십분 활용하고자 했던 노력이 발현된 것이다.
'라디오에서 뮤지컬이 가능할까?' 그 시작은 엉뚱한 상상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자나깨나 그것만 생각했다. 신문을 보고, 책과 인터넷을 뒤졌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봤던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은 채 봤다(?).
그렇게 얻은 해답은 '상상력을 자극하면 마음의 눈으로 보여줄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었다. '거기에 따뜻함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고민은 사회의 편견으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희망을 꿈꿀 수 있다면 하는 생각들이 겹쳤다.
36분 짜리 작품을 빚어내는데는 꼬박 1년이 걸렸다. 가끔 스웨터를 거꾸로 입고, 헤어크림을 얼굴에 바르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지만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동안 내내 출연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
"공부를 잘했던 수영이는 학교에서 소위 '왕따'를 당하면서 휴학을 하고 대인공포증에 사로잡혔었어요. 하지만 함께 노래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면서 이제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꿔요."
그는 계속해서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건강한 가정과 사회가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뉴미디어의 등장 속에 점점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라디오를 지키는 것'이 또한 박 PD가 그려 놓은 미래다.
"라디오, 특히 지방 라디오는 예전에 비해 입지가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노력을 해야죠. 하지만 콩나물이 한번에 물을 많이 준다고 쑥쑥 크지 않듯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애정이라는 물을 주겠습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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