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일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던 내 아이는 코 밑에 털이나기 시작하면서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나에게 무력감을 주는 존재, 너무나 다루기 힘든 까다로운 존재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가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자라는가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나의 에너지는 내 아이에게로 쏠려 있고 나는 부모로서의 삶을 지향한다. 그러나 나는 부모의 본질을 알고 있는 것일까? 엄마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 되어 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 세상 대부분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한 인간이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경험할 수 있는 엄청난 변화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삶에 대한 의식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 또한 느꼈을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의식 변화는 동적인 것이어서 아이의 성장과 함께 바뀌어 가는 것이다. '아이를 낳다'에서 '낳다'의 사전적 의미는 '몸 밖으로 내 놓는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내 몸 안'이라는 공간에서 '내 몸 밖'이라는 공간으로의 물리적인 이동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출산의 경험은 아이에게 물리적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공간이 분리되었다는 것이 아이와 엄마와의 진정한 분리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아이와 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탯줄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그 탯줄은 서로가 당겼다가는 끊어질까 두려워 놓기를 반복하고 있는 고무줄과 같은 것이다.
마르셀은 아이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은 그 선물이 우리가 응답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름이라고 말했다. 부모는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아이는 '생명을 받는다'와 '세상에 나온다'라는 이중의 의미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피투된 존재이다. 그러나 피투된 상태에서 끊임없이 기투하는, 자기를 끊임없이 실현시켜 나가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아이는 자기를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인 사춘기에 정서적 탄생을 경험하는 것이며 엄마인 나 또한 정서적 출산을 경험하는 것이다. 요즘 내가 겪고 있는 내 아이와의 갈등의 경험들은 정서적 태어남과 정서적 출산에 대한 아이와 나의 불안감의 결과일 것이다. 아이는 엄마로부터 태어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고 나는 아이를 진실로 낳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오미형 경일대 아동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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