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미행했던 현장 납치조 1973년 8월 8일 오후 1시 19분 행동 개시. 6명이 도쿄 그랜드 팔레스 호텔 2212호에서 양일동을 만나고 나오는 김대중을 납치해 2210호로 끌고 들어감.
침대에 눕혀 마취제로 기절시킨 뒤 오사카 오카모토 빌딩 302호 총영사관 숙소로 알려진 중앙정보부 안가로 옮김. 코만 남기고 화물 포장용 테이프로 얼굴 전부를 포장하고 9일 새벽 1시쯤 용금호 선창 밑 타기실에 감금.
9일 오전 8시 45분 오사카항 출발, 12일 오전 7시 부산 부두 진입. 구급차로 위장한 수송차량에 태워 서울의 중정 안가에 감금. 13일 밤 납치 129시간 만에 동교동 집 앞에서 풀어줌.'
이상은 박정희 유신체제 하에서 외국 땅에서 자행된 '김대중 납치사건'의 과정이다. 일본 경찰청의 조사 결과 한국 정부가 개입됐음이 드러났으나 정부가 이를 완강히 부인해 한·일 외교가 교착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사건 발생 30여 년이 지나 여기저기에서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에서 중정 요원에 의한 조직적 범행이었음이 밝혀진 상태이다. ▲1925년 미국 KKK단, 워싱턴에서 제1회 전국대회 개최 ▲1969년 월북 무용가 최승희 사망.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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