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당시 히로시마 인구 40여만 명중 일본인 7만, 한국인 3만5천여 명이 목숨을 잃고 도시는 잿더미가 됐다.
그로부터 61년이 지난 이날,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 영창리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는 당시의 불씨를 담아와 평화의 상징으로 한국에다 불씨를 지피는 뜻깊은 행사가 마련됐다. 한국 피폭자들을 돕기위해 설립된 일본의 시민단체 태양회(이사장 다카하시 고준)에서 위령제와 함께 '평화의 불탑'을 위령각 옆에 세운 것.
고준 이사장은 "원폭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과, 지금도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평화의 불을 지핍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이 불씨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며 "사랑과 용서, 평화의 불씨로 한국의 히로시마(합천)에 영원히 지펴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 불씨는 당시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숙부를 잃은 야마모토 다츠오에 의해 지금껏 평화의 상징으로 타오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잿더미가 된 집에서 불씨를 담아 고향으로 돌아온 야마모토 씨 가족은 '언젠가는 숙부를 죽인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어 원수를 갚겠다.'며 불단과 부뚜막 등에 켜놓는 등 '원한의 불씨'로 키워왔다.
그러나 지금은 '원한의 불'에서 '평화의 불'로 바뀌었고, 불도 후쿠오카현에서 관리하며 도쿄 오에노의 시민공원에서 '반전·평화의 불'로 계속 타오르고 있다.
태양회는 이날 일본 평화의 탑에서 채화한 불씨를 램프에 담아와 합천의 위령각 옆 화강석 석탑에 밝히게 됐다. 이날 평화의 불탑 건립과 함께 열린 위령제에는 유족과 기관·사회단체장, 한국·일본태양회 회원,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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