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犬(개)과 狗(구)의 조화

모레(9일)는 末伏(말복). 연일 35℃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복땜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 찌는 복 더위에 인사권이니 '선장' 이야기로 티격 태격하는 정치판 시비는 접어두고 해마다 삼복만 되면 맞붙는 보신탕 시비나 들어 보자.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동물 애호 단체들은 '개고기 금지 법안' 제정을 요구하며 뙤약볕 아래서 보신탕 반대 시위를 벌였다. 판에 박힌 논리지만 보신탕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개고기 문화가 악습이고 야만적인 食(식) 문화라는 것이고 찬성론자들은 소나 닭고기 먹는 것과 다를 것 없는 나라마다의 고유한 식문화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식구처럼 키우던 개를 잡아먹는 게 야만적이지 않으냐는 반대론도 정서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얘기긴 하다. 그러나 보신탕에 관련된 문헌 기록들을 보면 찬성 쪽의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

개고기 식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쪽은 주로 애견문화가 진화된 미국이나 유럽 쪽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지난 88올림픽 때 '개고기 먹는 한국에서의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며 엄포를 놓았던 프랑스 어느 여배우도 사실은 자기네 조상들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1870년 무렵 프랑스 파리(Paris)에는 개 정육점뿐 아니라 고양이 정육점, 큰 쥐 정육점까지 있었고 '생또 노레'라는 개시장 골목에는 개고기 1kg에 2프랑씩 비싸게 팔려 파리 시내에 남아난 개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도 프랑스 본토에서는 먹지 않지만 프랑스 영토인 폴리네시아에서는 개고기를 상용, 국경일인 7월 14일에는 토종개의 절반이 꼬치구이로 사라진다고 한다. 고대 로마(Rome)인이나 독일, 벨기에도 옛날에는 개고기를 먹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의 알래스카 원주민, 인디언, 캐나다 원주민, 하와이인,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페루의 인디오들도 개고기를 먹었고 제사 때는 제물로 사용했다.

개고기 식문화를 가졌거나 가지고 있는 몽골에서 중국, 한국, 알래스카, 중남미, 폴리네시아, 남미 페루까지 이어진 종족들이 대부분 개고기를 먹은 걸 보면 몽골리안이 대륙 이동을 거쳐 이주해 간 지역에는 거의 다 개고기 문화가 전승됐다는 추정을 해 보게 된다. 그런데 유독 대륙 이동설의 시발점인 몽골만은 개를 신성시하고 아주 특별한 질병치료의 경우가 아니고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칭기즈칸도 아홉 살이 될 때까지 개를 가장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있다. 몽골 사람들은 개를 절대로 돈 주고 사고팔지 않고 개 밥그릇을 밟거나 넘어 건너가지도 않을 만큼 존중한다. 개가 죽으면 꼬리는 잘라 머리맡에 베개처럼 받쳐서 '다음 세상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한다.

공자도 기르던 개가 죽었을 때 자신이 깔고 앉았던 자리로 개를 덮어 묻어 주게 했다. 보신탕 반대론을 펴는 동물 애호가 쪽의 인식과 일치하는 경우다. 유럽인들과 달리 힌두교도들이나 회교도들은 자신들이 쇠고기를 안 먹고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고 개고기를 먹는 타민족이나 종교를 야만적이라 비난하지 않는다.

프랑스 사람들이 달팽이를 먹고 미국 사람들이 소나 말에 불에 달군 인두를 찍어 목장 소유 표시를 해도 개고기 먹는 민족이 '너희는 동물 학대 아니냐'고 따지지 않는다. 결국 민족마다 식문화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적절히 바뀌고 전승되는 기호일 뿐이다. 애견(犬)과 식용견(狗'구)의 구분된 문화로 조화시켜 나간다면 해마다 밑도 끝도 없는 소모적인 개고기 시비 벌일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다 같은 물을 먹어도 독사는 독을 만들어 내고 소는 젖을 만들어 낸다'는 佛家(불가)의 가르침대로 개고기를 먹든 쇠고기를 먹든 똑같이 귀한 음식을 먹었으면 이왕이면 소의 젖처럼 좋은 생각, 유익한 행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한 식문화가 아닐까.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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