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년째 다발성경화증 앓는 장명아 씨

장명아(28·가명·서구 비산동) 씨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뜬다. 결혼날짜를 잡았다는 친구의 메시지다. 순간 명아 씨는 전화기를 붙들고 '난 이게 뭐야.'라며 울음보를 터뜨린다. 영문을 모르던 어머니 김희순(54·가명) 씨도 문자메시지 내용을 본 뒤 명아 씨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린다.

명아 씨는 이미 4년째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다. 중추신경계(뇌와 척수)에 수시로 염증이 생기면서 신경을 파괴하는 질환. 몸이 굳어가거나 시력, 청력 등 감각이 마비될 수도 있고 의식이 없을 수도 있는 등 증상은 다양하지만 아직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난치병이다.

전문대에 다닐 때부터 시내 한 보석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보탰던 명아 씨. 졸업 후엔 그곳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성실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이 매장 관계자 눈에 들었던 덕분. 김 씨는 그런 딸이 대견하고 든든했다. 그렇게 일하길 4년 남짓 됐을까. 지난 2002년 2월, 명아 씨는 구토를 하며 쓰러졌다.

"딸아이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찾은 병원에선 위염이라며 약을 지어줬어요. 그래도 구토가 멈추질 않아 뭔가 잘못됐다 싶었죠. 큰 병원을 찾아 수차례 정밀검사를 받은 뒤에야 병명을 들을 수 있었어요. 몸이 점차 굳어 가다 죽음에 이르는 다발성경화증인데 치료하기가 어렵다더군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김 씨는 억지로 힘을 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잘 알던 까닭에 자신이 벌어 시집가겠다며 악착같이 일해 온 명아 씨. 김 씨는 그런 딸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다리가 조금씩 굳어가던 딸을 부축, 출퇴근을 함께 했다.

하지만 명아 씨의 증세는 금세 악화됐고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병원 문턱을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됐고 양쪽 다리도 굳어버려 혼자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자괴감에 빠진 명아 씨는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김 씨는 다 큰 딸을 들쳐 업고 지역 큰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녔지만 완치될 수 있다는 말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굿판을 찾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은 뒤에야 한쪽 눈이나마 보이고 마비된 다리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다리는 다시 마비됐고 또 스테로이드제를 맞아야 했다. 이후 그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됐다.

"명아를 업고 계단을 내려가다 힘에 부쳐 넘어진 적도 많았어요. 둘이 엉켜 땅바닥에 나뒹군 뒤엔 무릎, 팔에 멍이 시퍼렇게 들었죠. 그래도 아픈 줄 몰랐어요. 마음이 더 아팠으니까. 먼지도 털어내지 않고 둘이 부둥켜안고 펑펑 울곤 했습니다. 그 와중에 명아는 목을 매 죽으려고도 했어요."

조그만 이발소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이미 2년 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내 눈을 떼 명아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말을 남긴 채. 때문에 생활비와 병원비는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는 명아 씨 오빠 석주(31·가명) 씨가 댄다. 여자 친구가 있지만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는 탓에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으론 여동생 병원비와 생활비 대기도 벅차기 때문.

뇌병변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던 명아 씨는 어느새 2급 장애인이 됐고 밀린 병원비만 260여만 원. 가진 돈은 없고 병마와의 싸움에 지쳤지만 김 씨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아직 포기할 순 없어요. '엄마와 오빠에게 미안하다'며 빨리 죽겠다던 명아도 요즘엔 살려고 힘을 냅니다. 항암치료도 잘 버텨 내고요. 저도 용기를 내야죠. 저보다 자식이 먼저 눈을 감게 할 순 없잖아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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