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 농촌체험] (18)포항 삼굿마을

태풍과 장마가 할퀴고 갔지만 마을은 여전히 아름답다. '얄미운' 비때문에 체험을 2주일이나 뒤로 미뤄야했던 체험객들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마을에 채 도착하기도 전 버스 안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느라 한차례 부산을 떤 아이들은 곧바로 계곡으로 뛰어든다. 물은 깊지않지만 잇따르는 물놀이 사고 소식에 아빠 엄마들은 물가를 차마 떠나지못한다.

"야야, 이리 와봐라. 너거 이 물고기 이름 아나?" 마을 손진욱(54) 새마을지도자가 힘차게 걷어올린 반두(양쪽 끝에 가늘고 긴 막대로 손잡이를 만든 그물)에는 벌써 은빛 비늘이 퍼득거리고 있다. 동사리, 돌고기, 기름종개, 버들치, 갈겨니.....

처음엔 무서워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하나씩 물병을 들고 줄을 선다. "할아버지, 얘는 꼭 미꾸라지처럼 생겼어요. 집에 가져가도 되요?" "수돗물에 넣어놓으면 금방 죽어. 놓아주고 가거라."

청정마을 상징 '다슬기국'

마을회관에는 이경옥(47·여) 포항기술센터 지도담당이 천연염색 체험재료들을 갖추고 기다리고 있다. "양파껍질을 달인 물에 손수건을 충분히 적신 다음에 헹궈 주세요." 조몰락 조몰락거리며 나름대로 열심히들 하지만 현규복(66) 할머니의 마음에는 영 들지않는 모양이다. "이리 줘 봐, 그렇게 하는 게 아냐. 내가 가르쳐줄게." 염색액에 넣어뒀둔 하얀 손수건은 어느새 고운 노란색으로 변신했고 체험객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쏟아진다.

포항 북구 죽장면 매현2리, 삼굿마을은 조선 중기 문신인 조광조의 후손들이 기묘사화(1519년)를 피해 들어와 터를 잡은 곳이다. 피난처였던 만큼 마을은 높고 낮은 산으로 완전히 포위(?)돼 있다. 하지만 마을 앞을 흐르는 가사천은 금호강의 발원지답게 맑고 깨끗해 대구·포항·영천 등 인근 도시에서 찾아온 피서객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다.

저녁상 반찬으로 깻잎김치, 부추전, 감자전, 고추찜이 등장한다. 하나같이 청정자연을 자랑하는 이 마을에서 난 것. "다슬기국도 마을 앞 개천에서 잡은 거야. 강원도에도 우리같은 청정마을은 찾기 힘들 걸?" 체험객들과 함께 숟가락을 들던 조성태(64) 삼굿마을추진위원장의 말에는 마을에 대한 자존심이 가득 했다.

"윷이야! 모야!" 달군 돌 위에 물을 뿌려 감자를 쪄내는 '삼굿놀이'의 연기가 마을을 포근하게 덮고 있는 가운데 지게 윷놀이가 시작된다. 어른 허벅지 굵기만큼 큼지막하게 다듬은 윷가락을 지게에 졌다가 쏟아붓는 놀이다. 낯선 모습에 모두들 지게 한 번씩 져보겠다고 난리다. 이긴 가족들은 한아름 선물을 받아 신나고 진 팀들도 잘 익은 감자에 즐겁다.

구상나무 미국 수출로 큰 소득

도시의 밤은 열대야로 허덕이지만 산골의 밤은 선선하다. 절로 이불자락이 당겨진다. 하지만 이름 모를 온갖 산새들의 인사에 눈을 아침은 오전 8시인데도 벌써 덥다. 서둘러 식사를 한 뒤 계곡 너머 감자밭으로 향한다. 체험을 위해 일부러 조금 남겨둔 감자밭의 감자는 웃자란 덕에 어른 주먹보다 훨씬 크다. 굵은 땀방울을 흘려가며 캔 감자 무게만큼이나 즐거움도 커진다.

마을 주민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 뒤 출발한 버스는 내연산 경북도수목원 앞에 멈춰섰다. 찜통더위에 내리기싫어하던 체험객들도 수목원 양태근 소장의 재미있는 설명에 어느새 눈을 반짝이고 열심히 받아적는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특산종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지않는 사이 미국사람들이 가져가 크리스마스트리로 큰 돈을 벌고 있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하답니다."

더위 속에 치러진 강행군에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이내 잠에 빠져들었지만 모두들 마음 속에는 우리 농촌과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이 싹트고 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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