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HD역사스페셜'이 11일 오후 10시 주목하는 것은 '93년 만의 귀환, 조선왕조실록'이다.
도쿄대학의 '기증' 형식으로 이번에 겨우 한국으로 돌아온 조선왕조실록은 강원도 오대산 사고에 소장됐던 실록의 일부인 47책이다.
왜란과 호란, 그리고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면 큰 위험에 처했던 실록이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지는 데는 파란만장한 사연이 있었다. 실록의 귀환 과정과 함께 조선왕조실록, 그 수난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조선왕조실록은 엄청난 기록의 밀도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일본이나 중국의 실록에 비해 조선왕조실록은 그 방대한 양과 내용의 치밀함, 사론(史論)이라는 독특한 서술방식이 거의 독보적인 수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실록은 당대 왕이 사망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사관들이 쓰는 사초 외에 다양한 기록을 사료로 이용해 초초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중초를 제작한 뒤 감수 과정을 거쳐 정본을 만드는 3단계 공정을 거쳐 제작됐다. 복잡하고 치밀한 실록 제작기를 따라가 본다.
실록에는 '사론(史論)'이라는 사관의 평가가 곁들여진다. 왕이나 대신들에게는 두려운 존재. 그래서 사관들은 때때로 목숨을 걸고 역사를 기록했다. 조선시대 가장 큰 필화사건이었던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
김종직은 부관참시라는 전례 없는 처형을 당한다. 바로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쓴 사초가 노출되면서, 사관은 물론 이미 죽은 김종직까지 한 번 더 죽게 한 결과를 낳았다. 정치적 박해를 무릅쓰고 역사를 기록했던 조선시대 사관에 대해 알아본다.
임란 중 전주 외에 모든 사고가 불타버리면서 조선 조정은 사고 관리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실록을 후세에 그대로 전하기 위한 당대의 노력을 살펴본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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