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명르포 낙동강] ⑤구담습지

안동 하회마을 아래부터 강 양쪽에 습지가 길다랗게 펼쳐져 있다. 낙동강 중상류인 안동시 풍천면 기산리 구담교와 광덕교 사이 4km에 걸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생태계의 보고 '구담습지'다.

▲구담습지는=낙동강에는 현재 10개 안팎의 크고 작은 습지가 남아있고 그중 원시습지로 불리는 우포늪, 철새도래지인 주남저수지, 낙동강 하구 등이 유명하다.

구담습지의 경우 유명세는 그리 없지만 희귀 동식물이 대거 서식하는 등 그 내용면에서 알차고 귀하다.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황무지였지만 1996년 매일신문사와 영남자연생태보존회의 낙동강 공동 조사에서 처음으로 발견돼 환경부에 의해 습지로 등록된 역사를 갖고 있다.

구담습지는 여타 습지와는 달리 1976년 안동댐이 생긴 후 제방안에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안동댐 축조 후 물 양이 줄어들면서 점토, 미사(微砂) 등이 점차 퇴적돼 그 위에 각종 동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변했다. 습지의 왕버들 나이테를 조사하면 가장 오래된 것이 지름 20~22cm 정도로 수령 20년 안팎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민들은 "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강가에 모래와 자갈 밖에 없었다."고 했다.

습지 폭은 100~150m 정도이고 수심은 50~80cm 정도로 그리 깊지 않다. 물 웅덩이에 들어가면 성인남자 무릎 정도까지 차오르는 정도다.

조사팀의 조영호 박사(식물학)는 "10년전 1차 조사 때에 비해 습지가 훨씬더 확장됐고 하상도 1, 2m 정도 높아진 곳도 많다."고 말했다.

▲무엇이 있나=달맞이꽃이 만발한 제방 위에서 습지를 둘러보면 곳곳에 서있는 2, 3m 높이의 왕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뛴다.

붉은 색 잎사귀를 내밀고 있는 왕버들은 물을 좋아하는 나무지만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안동시가 홍수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해마다 왕버들을 대거 베어내지만 없애기는 아예 불가능하다. 이들은 뭉텅 잘려나가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또다른 뿌리를 내밀며 싹을 띄운다. 밑둥치가 7, 8개 넘는 것도 많이 보였다.

그 아래 웅덩이 부근에는 달뿌리풀, 강아지풀, 물억새, 갈대 등이 무성하다.

다양한 어류가 수초와 수변식물, 유속이 빠른 여울과 흐름이 느린 웅덩이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도 습지의 특징. 피라미와 기름종개, 납자루, 돌마자 등 희귀종이 많았다. 황조롱이, 수달, 수리부엉이 등 천연기념물도 서식하고 있다. 노루, 너구리,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놀이터다.

안동시 풍천면 신성리의 한 주민은 "습지에 사는 짐승들이 고구마·땅콩 밭을 파헤쳐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며 "라디오를 하루종일 틀어놓고 허수아비를 세워놓아도 허사"라며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습지의 육화(陸化)현상=습지에 모래, 자갈이 계속 쌓이고 왕버들 숲이 생기면서 서서히 육지로 변하고 있었다. 조사연구팀은 앞으로 10년후쯤 습지의 특성이 상당부분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조영호 박사는 "예전에는 웅덩이 주위에 매자기, 구들 등 수생식물이 많이 분포했으나 최근 잇단 홍수 등으로 하상변화가 심하고 생태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이 식물들이 거의 없어졌다"면서 "생물의 다양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조사연구팀 내에서도 육화현상에 대해 '자연에 맡겨야 한다' '보존이 필요하다'는 상반된 목소리가 나왔다.

습지를 보는 눈은 이해관계나 신념에 따라 다르다. 한쪽에서는 보존을 외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라지길 바라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은 멀고도 힘든 일일까.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습지란?=낙동강 습지는 대부분 범람으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위에 모래와 흙이 쌓이면서 각종 생물군이 생겨난 형태다. 함안일대 습지와 주남저수지, 우포늪등이 대표적이다.

하천과 육지의 생태계를 연결하는 '오염필터'의 역할을 하면서 각종 동식물에게 서식처를 제공한다. 습지 기능이 악화되거나 감소하면 커다란 경제적인 손실을 초래하고, 이를 보충하려면 막대한 경제적인 부담을 안아야 하는게 보통이다.

특히 습지는 큰 물을 머금는 기능을 갖고 있어 홍수 예방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물이 지하층으로 이동할때 여과시키거나 농사에 필요한 유기물을 수송하고 관광자원화(우포늪)되기도 한다. 예전 낙동강 일대에만 수백개 습지가 있었으나 70, 80년대 각종 고속도로 공사에서 나오는 흙, 폐석으로 메워버리거나 농토로 이용되는 바람에 불과 10곳 안팎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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