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 오페라 '불의 혼' 주역 김승철 계명대교수

타 지역 출신들이 쉽게 발 붙일 수 없는 곳으로 알려진 대구에서 실력 하나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바리톤 김승철(45) 계명대 교수다.

지난 3월 공개 모집을 통해 계명대 교수로 채용되면서 대구에 정착한 김 교수는 제주 토박이. 연고도 없는 곳에서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기념 창작 오페라 '불의 혼' 주역으로 캐스팅 돼 지역 예술계에 존재 가치를 알렸다.

"창작 오페라는 기존 오페라를 하는 것보다 3, 4배 힘이 듭니다. 음악과 등장 인물에 대한 분석이 잘 되어 있는 기존 오페라와 달리 창작 오페라는 모든 것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개월 동안 '불의 혼' 연습에 메달렸는데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중요한 배역을 맡겨 준 만큼 좋은 무대로 보답하겠습니다"

김 교수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창작 오페라는 성악가에게 귀중한 무대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13년 간 외국 무대에서 활동할 당시 외국 성악가들이 한국 오페라에 대해 물으면 마땅히 내세울 만한 작품이 없어 민망했던 기억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베르디 오페라 보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이 배여 있는 작품을 더 선호합니다. 좋은 오페라 작품 1개만 있으면 해외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확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창작 오페라 '불의 혼'은 큰 의미를 가집니다" 김 교수가 '불의 혼'에서 맡은 배역은 박중서 역. 친일파로 알려져 있었으나 죽으면서 전 재산을 국채보상운동에 내 놓은 인물이다.

김 교수는 박중서 캐릭터 분석에 열을 쏟고 있다. 관객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맡은 배역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신념의 표현이다. "악보에 표시된 쉼표, 점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작곡가가 어떤 의도로 작곡 했는지를 꼼꼼히 따져 나가다 보면 작품의 그림이 그려 집니다" 김 교수는 가난에 못 이겨 딸을 사당패에 보내고 살기 위해 친일을 한 박중서는 평생 죄책감과 인간적 고뇌에 시달렸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배우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가사의 뜻을 잘 전달해 주는 실력파 성악가로 자리 잡았지만 음악 입문은 매우 늦었다. 중학교에 입학 해서 피아노를 처음 구경한 한라산 중턱 산골 출신으로 음악을 할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저 노래 잘 부르는 소년에 불과했다.

1980년 제주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김 교수는 1984년 군 제대 후 복학을 준비하다 목사의 권유로 진로를 변경했다. 3개월 동안 학력고사와 실기 시험을 준비, 1985년 제주대 음악교육학과에 들어갔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음악가의 길로 접어 들었지만 기초가 부족해 한학기만 다니고 휴학했다. 1년 휴학기간 동안 피아노도 배우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 대학 졸업 후 2년간 교편 생활을 하다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르면서 성악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코센자 국립음악원, 빼스카라 음악 아카데미, 로마 아람아카데미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오페라의 거장 바리톤 '쥬세페 타데이'에게 발탁되어 사사 받았다. 알카모 국제성악콩쿨, 사비아도로 국제성악콩쿨 등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1999년 프랑스 '디종 오페라 대극장'에서 열린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주역을 맡아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장식했다. 2001년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한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주역을 맡아 한국 무대에 첫 선을 보인 이래 국립오페라단, 예술의 전당, 서울시립오페라단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오페라단과 함께 활약했다.

특히 지난해 예술의 전당이 제작한 오페라 '라보엠'에서 세계적인 소프라노 홍혜경 씨와 호흡을 맞춘 것을 비롯, 동경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은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 서울시립오페라단 창단 20주년 기념작 '일 트로바토레' 등 주요 오페라에 빠짐없이 출연하며 국내 정상급 바리톤의 면모를 과시했다.

내년 3월 독창회를 열 계획인 김 교수는 "뮤지컬이 급속도로 대중화 되는 반면 오페라는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장르로 남아 있습니다. 오페라 대중화 전도사 역할과 함께 바리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베르디 4개 오페라 중 유일하게 경험하지 못한 '멕베드' 주역을 맡아 보고 싶습니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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