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도 내걸 수 없고 측량도 못한다.'
7일 오후 백두산 정상. 대구과학대 측지정보과 교수들이 측량장비를 들고 천지의 봉우리간 거리측량을 하자 중국 국경수비대원들이 제지했다. 소형 태극기도 달지 못하게 막았다.
백두산과 천지가 자기네 땅임을 세계에 인식시키고 관광자원화로 경제적 이득을 챙기기 위해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지난 6월부터 '백두산(長白山·중국명 창바이산) 공정'을 본격화 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이 두 동강 난 채 중국에 침탈당하고 있는 현장을 7일 둘러봤다.
백두산 공정의 시작점은 백두산 관문으로 통하는 연변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시. 연길시는 마치 한국의 여느 도시들처럼 도시환경이 잘 정비돼 있었다. 한 조선족 동포는 "1년전만 해도 연길시는 중국내 다른 도시들처럼 그렇게 깨끗하지 못했다.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투자를 해 단번에 변모시켰다."고 자랑했다.
올해 봄 도심을 흐르는 하천 양쪽에 왕복 4차선 순환도로가 건설됐고 하천둔치도 깨끗하게 정비됐다. 도심 대부분의 도로가 깨끗한 아스팔트로 단장됐고 도로변 인도도 새 보도블럭으로 교체됐다.
지난 해 8월 연길시를 다녀온 남효윤(43·대구과학대 교수)씨는 "지난 해는 도시 전체가 공사판 같더니만 1년만에 상전벽해가 됐다."고 말했다. 연길시의 한 공무원은 한국에서 이슈가 된 고구려사와 발해사의 중국 역사 편입과 백두산 공정을 본격화하면서 조선족 동포들의 동요를 막으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고 귀뜸했다.
연길시에서 백두산까지는 280km, 차로 4시간 거리. 중국은 백두산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백두산에서 불과 30여 ㎞ 떨어진 푸쑹(撫松)현 백산시 인근에 지난달 10일부터 '장백산공항' 건설에 착수했다.
한 여행사 안내원은 "공항이 건설되면 연길시를 거치지 않고 백두산에 직행할 수 있어 관광수입 감소를 우려한 연길시가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중국 정부는 공항 건설을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백두산 초입에 다다르자 옛 중국 황실의 진상품이자 백두산 특산물인 인삼밭과 꿀을 기르는 벌통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청색비닐로 덮인 인삼밭은 수백평에서부터 2~3천평 규모로 백두산 비탈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행가이드에 따르면 백두산 인근에만 수백개가 있고 중국내 인삼 생산량의 70%에 육박한다는 것.
중국은 백두산의'장백산 인삼'을 품질증명 상표로 등록시키고 한국의 고려인삼에 버금가는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백두산 등정은 입구에서 중턱까지는 대형 버스를 이용한 뒤 지프차로 정상까지 오르게 된다. 중국 정부는 6월말부터 민간회사나 개인차량의 백두산 진입을 정지시키고 관광객 운송 차량회사를 직영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대형 버스 250대, 7인승 지프차 110대를 구입했다.
기념품 가게에는 최근 판매를 시작한 광천수 생수가 눈에 띄었다. 중국은 '장백산 광천수 산업 발전추진팀'을 구성, 유럽 알프스산, 러시아 카프카스산맥 광천수와 함께 세계3대 냉광천수로 불려지는 백두산 광천수 홍보와 판매를 시작한 것. 길림성은 백두산 인근 3개 기지에 광천수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해발 1천m에 있는 주차장에서 내린 뒤 지프차를 타고 곡예하듯 20여분 오르자 중국 국경수비대와 기상관측소가 있는 정상 200m 아래에 다다랐다. 중국인 신혼부부 2쌍이 웨딩촬영을 위해 정상을 오르고 있었다. 이들은 길림성 신혼부부들의 경우 중국 10대 명산의 하나인 백두산에서 웨딩촬영을 많이 한다고 했다.
경사 60~70°의 비탈길을 3~5분 오르자 정상에 다다랐다. 군데 군데서 '어디서 왔느냐?'는 한국말이 오갔다. 7월말에서 8월 중순까지 등정하는 하루 5천여명 가운데 80%가 한국인이다.
정상 능선을 타고 30여m 간격으로 중국 국경수비대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잔뜩 긴장한 채 관광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연수를 겸해 단체여행을 온 서울의 한 벤처업체 직원들이 태극기가 그려진 현수막을 펼치자 재빨리 다가와 걷으라고 재촉했다. 또 방송용 큰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어김없이 달려와 감시했다.
세번째 백두산 등정을 한 정상열(48·서울·개인사업)씨는 "이전에는 국경수비대원들이 잘 눈에 띄지 않았는데 올 해부터는 감시 병력이 대폭 증가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백두산 일대를 돌아 본 김석종 대구과학대 교수는 "북한이 백두산 자원개발이나 영유권에 관심이 소홀한 사이 중국이 자국의 단독 영토인 양 개발하고 홍보해 사실상 우리 영토를 뺏기고 있는 꼴"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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