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중국 武俠物(무협물) 제목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笑傲江湖(소오강호)'. '神筆(신필)로 불릴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중국의 무협작가 金庸(김용)의 대표작 중 하나. 홍콩의 유력지 明報(명보)의 주필을 지냈던 김용이 중국 현대사의 암흑기였던 文化革命(문화혁명) 기간 중 썼던 정치 풍자 무협 소설이다. 그의 작품들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방대한 스케일로 수많은 현대인들을 武林(무림)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소오강호'는 무예 고수인 홍콩 배우 이연걸이 주연을 맡아 빅 히트를 쳤던 영화 '東方不敗(동방불패)'의 원작이기도 하다. '江湖(강호)'는 한마디로 중국 무협물의 상징적 단어다. 사전적인 의미는 여러 가지나 무협물에서는 '세상', '천하' 등을 뜻한다. 그것도 은혜와 배신, 복수가 끊임없이 피비린내를 부르는 비정한 세계. 제목 중의 '傲(오)'는 '거만하다'등의 뜻도 있지만 '서릿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국화'라는 '傲霜之菊(오상지국)' 처럼 '꼿꼿하여 굽히지 않는다'는 뜻도 지닌다. 제목 '소오강호'에는 '풍진 세상을 바라보며 의연하게 웃는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주인공 '영호충'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정의감 외엔 딴 욕심 없는 탈권력적 인물이다. 존경하는 스승이 사실은 강호 제패 야욕을 숨긴 위선자임을 알고 큰 충격을 받지만 결국 스승을 꺾고 세상을 바로잡은 후 바람처럼 飄飄(표표)히 떠나간다. 한 점 미련도 없이….
○…지난 8일 있은 차관급 인사에서 취임 6개월밖에 안 된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전격 경질됐다. 그의 落馬(낙마)로 저잣거리가 시끌시끌하다. 청와대가 밀어붙이려던 아리랑TV 부사장, 한국영상자료원장 인사를 유 전 차관이 거부해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유 전 차관이 9일 문화부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 이임인사가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의 '소오강호'를 언급하며 "참, 재미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라고 썼던 것. 영화 속 주인공이 즐겨 부르는 노래 '파도에 웃음을 싣다(滄海一笑聲)'는 복마전 같은 이 世間(세간)살이에서 넉넉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푸른 하늘을 보고 웃으며 어지러운 세상사 모두 잊는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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