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조선의 문화공간 1·2·3·4

조선의 문화공간 1·2·3·4/이종묵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16세기 이름난 문인 농암 이현보의 집은 도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분천 강가에 있었다. 퇴계 이황이 우리집 산이라 부른 청량산이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집 앞 소나무 한 그루가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청량산이 온전하게 보이지 않았다. 황준량이 소나무를 자르라고 하였으나 이현보는 누대를 옮겨 청량산을 훤히 볼 수 있게 했다. 이현보는 '인간의 망령된 생각을 막는다'는 뜻으로 두망대(杜妄臺)라 이름 짓고 청량산을 바라보며 살았다.

시대순 따라 총 4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조선시대 사대부들과 이들의 사상, 예술, 풍류가 살아 쉼쉬고 있는 누정, 사찰 등 문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 개국부터 망국으로 치닫는 19세기까지 500여년을 풍미한 사대부 87인과 이들과 교우하며 살아간 1천872인의 전기적 초상이 아름다운 문화 공간을 무대로 펼쳐진다.

1권의 시대적 배경은 개국 후 태평을 구가하던 시절부터 사화로 인해 사림이 유배를 떠나는 시기인 명종 무렵까지. 태평성세 동안 이름난 문인들은 도성을 둘러싼 4개의 산(백악산, 인왕산, 낙산, 목멱산) 아래 아름다운 집을 짖고 살았다. 인왕산의 앞뒤에 살았던 안평대군과 15세기 최고의 문벌 출신 성임은 벗들과 함께 글을 지으며 인왕산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남산에는 김안로가 터를 잡았다.

또 풍광이 아름다운 한강변에도 이름난 문인들의 정자가 들어섰다. 한명회의 압구정과 월산대군의 망원정 등이 시회(詩會) 공간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16세기 들어 태평성세에 균열이 일어난다. 연산군의 광기로 많은 문인들이 유배지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무오사화를 당하여 의주, 순천 등으로 유배된 조위와 갑자사화의 변을 당한 이행과 기준 등은 유배 생활의 고단함을 글로 달랬다.

연산군의 폭정을 종식하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태평성세를 회복하려 뜻이 곧은 선비를 기용했지만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딪혀 젊은 선비들은 죽음을 당하거나 먼 땅으로 내쳐지게 된다. 젊은 선비들은 출세를 하기보다 자연으로 돌아가 마음을 수양하려 했다. 후학들은 심곡서원, 필봉서원 등을 지어 조광조, 이자, 김안국, 김정국 등 강학을 하고 절조를 가다듬던 이들의 정신을 기렸다.

2권은 선조~광해군시대까지 문화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과 관련된 공간을 다루고 있다. 사림정치가 본격화되는 시기로 자의와 타의에 의한 귀거래가 이야기 중심을 이룬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선비는 서경덕, 이언적, 조식, 이황, 이이 등이다. 서경덕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화담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이언적은 경주시 옥산리 독락당에서 몸과 마음을 수양했다. 근엄한 유학자들이 강학과 수양을 한 반면 예술과 풍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산과 물을 배경으로 시와 노래를 지어 부르고 그림을 그렸다. 송인은 한강 동호에 수월정을 지었고 동호 건너에 있는 봉은사는 조선을 대표하는 시인 최경창, 백광훈, 이달 등 삼당(三唐)시인의 낭만적인 시가 태어난 공간이다.

3권에서는 광해군과 인조 시대 영욕의 세월을 산 문인과 17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임진왜란의 상처가 가라 앉기 시작하자 도성안에 명가들의 집이 다시 들어섰다. 이항복은 인왕산 필운대에 집을 꾸몄으며 김육은 남산 밑에 큰 집을 지었다. 하지만 대북파가 정권을 잡은 광해군 시절 서인의 핵심 인물들은 암흑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항복은 유배지인 북청에서 죽었고 김상용은 지방관으로 떠돌았다. 조선 후기 사상계를 호령한 송시열은 충북 괴산군 화양동에 머물면서 그의 신념을 실천하고자 했다.

4권은 18~19세기 문학과 학문, 예술을 빚낸 문인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벌열가(閥閱家)의 화려한 원림(園林)과 궁벽한 땅에서 예술혼을 사른 사람들이 대비되는 가운데 세상을 구하고자 노력한 실학자들이 돋보인다. 당대 문벌 김창흡은 획일적인 삶을 거부하고 금강산과 철원, 양평 등 산수가 아름다운 곳을 떠돌면서 살았다. 반면 부마였던 오태주의 후손들은 종암동에 저택을 마련하였으며 채제공은 오늘날 서울 번동에 집을 짓고 꽃과 물, 풍류를 즐겼다. 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은 목천에 자신의 과학정신을 담은 농수각을 세우고 새로운 학문을 열고자 했다. 박지원은 현감으로 나간 안의에서 중국 여행에서 깨달은 실학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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