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저우와 쑤저우 당서기의 운명은 판이하다.
원저우와 쑤저우는 같은 지급(地級) 도시지만 쑤저우 서기는 승진의 지름길이지만 원저우 서기는 공직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쑤저우 서기는 '성장(省長)의 요람'으로 불릴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 쑤저우 서기를 역임한 3명의 인사들이 차례로 약속이나 한 듯 상급기관인 장쑤(江蘇)성과 산시(陝西)성, 지린(吉林)성 성장으로 영전했다.
1998년 6월부터 2000년 9월까지 당서기를 역임한 양바오화(梁保華)는 2000년 12월 장쑤성장이 됐다. 이어 서기에 오른 천더밍(陳德銘)은 산시성장으로 영전해갔고 2002년 5월 쑤저우 당서기를 맡은 왕민(王珉)은 지린성장으로 갔다. 2004년 11월부터 서기직을 맡고있는 왕룽(王榮)이 어디로 영전해 갈지 주목되고 있다. 쑤저우와 달리 원저우 서기는 앞날이 불투명하다. 개혁개방 이후 원저우 서기가 성장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92년부터 원저우 서기를 맡은 장요우위(張友余)는 98년 저장성 인민대표회의 부주임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끝마쳤다. 98년 서기인 쟝쥐펑(蔣巨峰)은 쓰촨(四川)성 부성장으로 수평이동했다. 2002년 리챵(李强) 전 서기는 저장성 상무위비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다음이 왕젠만(王建滿) 서기다. 이처럼 확연한 두 지역의 당서기의 진로는 중국 지도부가 쑤저우모델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중국 지도부가 쑤저우 서기를 산시와 지린성 등 낙후된 지역 성장으로 영전시킨 이유는 쑤저우의 경제발전 경험을 전국에 확산시켜 쑤저우식 경제발전을 추진하라는 뜻이다. 2004년 원저우 서기로 온 왕젠만이 원저우방식을 버리고 쑤저우식 경제발전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건 것이다. 전임 서기들처럼 원저우식으로 갔다가는 자신의 정치적 미래는 더이상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외자 도입을 통한 경제구조 개혁에 나섰고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쑤저우식 방식이 성공한다면 정치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서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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