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이후 원저우(溫州)는 저장성(浙江省) 남단의 벽촌에서 민영경제의 발상지로 도약했다.
1980년대 중반 한 때 원저우로 통하는 길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공무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적이 있다. 원저우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고속 성장은 국내외 경제계와 학계로부터 광범위한 관심을 끈 것이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혀졌던 원저우가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2004년 말부터 원저우 시정을 맡은 왕젠만(王建滿) 서기가 대규모 외자 유치를 통한 원저우 경제 재건에 나선 것이다.
원저우 모델이 원저우에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인가? '원저우 모델'이란 외자 도입 없이 국내(또는 지역)자본으로 소규모 기업을 일으켜 민영경제를 성장 발전시킨 방식을 가리킨다. '저장(浙江)모델'이라고도 불린다.
◆발전방식 논란
원저우와 쑤저우(蘇州). 11.5계획(11차5개년 경제계획·2006~2010년)이 본격화한 2006년 들어 경제운용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됐다. 논란의 핵심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를 성장시킨 두 가지 방식의 장단점이다.
쑤저우는 장쑤성(江蘇省)의 고도다. 쑤저우는 부족한 자본과 기술을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외자 유치를 통해 GDP 등 경제규모를 확대해 온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성공을 거뒀다. 중국이 세계 6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바로 쑤저우방식 때문이었다. 쑤저우에는 여전히 외자가 집중되고 있다. 삼성반도체 중국공장을 비롯한 세계 500대 기업이 잇따라 쑤저우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원저우 역시 새롭게 원저우모델의 강점을 재인식시키면서 쑤저우모델의 약점을 파고든다. 원저우는 민영경제의 활력을 바탕으로 원저우 상인을 전국은 물론 전세계로 내보내고 있다. 칭짱(靑藏)철도가 개통되기 전부터 라싸의 상권을 움켜쥔 것이 원저우상인이었고 평양의 제1백화점을 인수한 것도 원저우사람이다. 원저우는 '작지만 내실있는' 민영경제의 강점을 갖춘 저장성경제를 대표하고 있다.
지난 5월 '중권신원조우칸(中國新聞週刊)'이란 한 주간지가 원저우와 쑤저우의 경제현황을 비교한 기사를 보도하면서 경제발전 모델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같은 논란의 도화선을 제공한 것은 사실 원저우시 왕젠만 서기다. 왕 서기는 2005년 신년회의 석상에서 "원저우시민을 위해 외자를 유치해야 한다."면서 외자 유치를 통한 원저우경제의 대형화를 자신의 시정방침으로 명확히 했다. 지금껏 외자도입을 배제하고 토착기업 위주의 경제를 지속해 온 원저우시가 발칵 뒤집어졌다.
대규모 외자를 유치, 석유화학공업을 육성하고 이를 원저우의 지주산업으로 삼는 동시에 항만을 개발하겠다는 것. 이것이 왕 서기가 내놓은 원저우 경제회생을 위한 처방이었다. 원저우는 낙후된 것이 사실이다. 인구는 740만이나 되지만 2004년 GDP는 1천402억 위안으로 인구 590만의 쑤저우(3천450억 위안)에 비해 3분의 1밖에 안된다. 96억 위안의 재정수입은 220억 위안이나 되는 쑤저우의 40% 정도다. 민영경제가 발달했다지만 원저우는 '낙후된 경공업도시'와 다름아니었다.
사실 원저우의 기업환경은 외자가 들어가길 꺼려할 정도로 폐쇄적이다. 원저우사람들은 "외자 혹은 외지기업이 원저우에 투자해서 성공한 적이 없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한다. 원저우 시정부와 금융기관 역시 외자기업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도 지역 기업에 대해서는 엄청난 금융지원을 한다. 원저우에서 '화샤(華夏)도금산업'을 운영하고 있는 태영호(太永昊) 사장은 "쓰촨(四川) 등 중국 내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원저우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여러 번 봤다."면서 "원저우사람들은 외지기업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싹을 잘라버린다."고 말했다.
2005년 4월 왕 서기는 '12345프로젝트'를 제시했다. 향후 3년간 시의 전역량을 동원, 10개 이상의 세계 500대기업을 육성시키고 고부가기술산업이 공업생산의 20% 이상을 차지하도록 하는 한편 10억 위안 이상의 대기업집단 30개 이상, 5천억 위안의 공업총생산 등을 달성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민영기업의 천국' 원저우경제가 대변혁에 휩싸였다.
2004년까지 원저우에 유입된 외자총액이 10억8천40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2005년 외자유치목표액이 16억 달러로 정해졌고 22억6천만 달러를 유치하는 데 성공한다. 원저우의 민영 기업인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원저우는 모든 게 부족하지만 돈만은 부족하지 않다.", "유동성 자본이 흘러넘치는데 외자유치는 무엇때문에 하는가?" 등이 그것이다. 2004년 통계에 따르더라도 원저우의 유동성자금은 3천130억 위안(약 400억 달러)에 이른다. 원저우에는 돈이 남아돈다. 왕 서기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쑤저우모델
쑤저우는 장강삼각주 16개 도시중 '1인당 GDP'가 가장 높다. 쑤저우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가장 큰 이유는 대규모 외자 유치 때문이다. 그러나 쑤저우경제의 약점은 GDP 성장속도와 지역 주민의 가처분소득 성장속도가 다르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쑤저우는 2005년 GDP규모로는 전국 제4위를 차지할 정도로 부자도시다. 외자는 전국 1위. 2004년 상반기 중 외자유치 규모는 45억 달러. 상하이(38억4천만 달러)보다 많다. 1인당GDP 역시 상하이를 능가했다.
그러나 2003년 한 네티즌이 쑤저우와 쓰촨성 청두(成都)의 각종 지표를 비교한 자료를 제시하면서 "쑤저우시민이 청두시민보다 잘 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쑤저우주민의 1인당 GDP는 5천 달러가 넘지만 도시민 수입은 1만 위안(1천280달러)에 불과하다. 쑤저우와 1인당 GDP가 비슷한 상하이는 2만 위안"이라고 주장했다. 쑤저우의 노동자들은 "GDP와 우리 소득은 관계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쑤저우 방식이 잘못된 것이고 쑤저우시민들이 가난하다고 할 수 있을까? 2005년 쑤저우시민의 가처분소득은 장쑤성 제1위. 쑤저우는 원저우의 2.3배에 달하는 재정수입으로 사회간접자본에 집중 투자했다. 원저우는 재정수입의 한계로 도로와 교량 등 사회간접시설은 물론 심지어 정부 청사를 짓는데도 민간자본을 빌려야 했다. 어느 도시가 부유한가?
GDP성장이 시민각자의 수입으로 직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쑤저우방식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원저우와 쑤저우 간의 논란은 세계적인 주목거리다. 쑤저우의 문제는 중국의 문제와 마찬가지다. 2004년 중국의 GDP규모는 세계 6위였다. 외환보유액은 세계 1위였다. 그러나 중국의 외자의존도는 80%에 달한다.
쑤저우경제는 이와같은 중국경제의 축소판이다. 중국 국무원 산하의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왕이밍(王一鳴) 주임은 "핵심기술이 없고 브랜드가 없는 우리로서는 외자를 도입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우리는 이 길을 걸었지만 앞으로도 이 길을 계속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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