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기업 채용 시스템과 대학교육

기업이 현재의 인재선발시스템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시 짜고 안정적인 고용제도를 도입하게 된다면, 오늘의 우리 대학들과 우리 교육은 과연 어떻게 될까?

기업의 장기적 인재선발시스템과 안정적 고용제도는 당연히 대학 교육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대학은 기업이 찾는 기초가 튼튼한 인재를 공급하기 위해 순수학문이나 기초학문 육성에 힘을 쏟게 될 것이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교육은 학원이나 전문대학의 몫이 될 것이다. 대학은 좀 더 순수하고 근본적인 학문을 가르쳐 그야말로 기초가 튼튼한, 그래서 무성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될 것이다.

물론 실용학문도 중요하다. 그러나 실용학문은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시장경제 체제하에서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굳이 정부나 대학에서 정책적으로 육성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실용학문은 수요가 많고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실용학문은 내버려두어도 스스로 번성하는 생명력이 있다는 말이다. 실용학문 전공자는 기초학문을 배울 기회가 잘 없겠지만, 순수학문을 익힌 사람은 곧 자기가 배운 순수학문을 응용하여 실용학문을 배울 기회가 많을 것이다.

이때 기초학문 전공자는 말 그대로 기초가 탄탄하기 때문에 실용학문에 대한 이해가 빨라 처음부터 실용학문을 배운 사람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선 순수학문은 후방관련 효과가 매우 큰 일종의 공공재라 할 수 있다. 정부가 기초학문이나 문화·예술을 중시하고 적극 육성해야 하는 이유이다.

실용학문을 숭상한 청나라보다 명나라나 한·당·송나라가 더욱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고, 실학파가 득세했던 조선말보다 오히려 세종조가 더욱 국운이 융성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대학이 본연의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선발에 관한 자율권을 가져야 한다. 대학이 자기 학생을 자기 방식대로 뽑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야 다양한 대학에서 다양한 인재가 나올 수 있다.

이것은 물론 대학이 맑고 깨끗하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대학이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부정이나 부패가 없이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 비로소 자율권이 의미를 갖는다. 좋은 학생을 선발해 일류가 되고자 하는 것은 모든 대학의 본능일 것이다. 이러한 본능은 대학의 타락을 막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어느 정도 기능할 것이다.

물론 자율화에 다소의 혼란이 따를 수는 있다. 그러나 조그만 혼란을 겁낼 필요는 없다. 혼란이란 어쩌면 우주의 본질이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자율화에 따른 대학의 색깔은 파격이자 멋이며, 창의력을 낳는 자궁이다.

완벽한 기준을 적용해 대학을 정확히 서열화시키고 학생을 완벽히 평가하여 그에 따라 정확히 각 대학에 배정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게 과연 최선의 방법일까? 인간의 등급을 매긴 낙인인 출신대학 이름을 각자의 이마에 새기고 다닌다고 상상해 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기업과 대학이 변화하면 학생은 따라서 변화할 것이다.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 취업이 가능하고 위험에 상응하는 수입이 각 업종 간 비교적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면, 학생은 자기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할 것이고 특정학과로 인재가 몰리는 쏠림 현상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파레토 최적 상태를 동시에 누리게 될 것이다. 기업은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기초가 튼튼한 인재를 채용해야 하고, 정부는 순수학문이나 기초학문에 집중 투자를 해야 하며, 대학은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그러면 학생은 더 이상 잔머리 굴리지 않고 자기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해 다소 미련스럽게 열심히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으로도 위험과 고통에 상응하는 균형있는 보상을 가져다준다.

자기가 자신있고 잘하는, 그래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그러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다. 출발의 실마리는 기업이 먼저 찾아야 한다. 요컨대 각자가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는 걸까?

오철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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