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왕의 인물산책] 권기홍 단국대학교 총장

단국대와 건국대, 동국대를 과거 '3국대'라고 불렀다. 실력이 다소 떨어지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조소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단국대를 얕잡아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 학생들 성적이 매우 우수하고, 경기도 용인시로 이전을 앞두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단국대 꿈의 한 가운데 권기홍(58) 총장이 있다. 영남대에서 20여년 학생을 가르치다 정계에 발을 들여 노동부장관과 국회의원 출마를 거쳐 제자리를 찾은지 1년여. 내년 이맘 때면 헐릴 서울 캠퍼스 총장실에서 만난 그는 의욕이 넘쳤다. 총장 임기가 끝나는 99년까지 최소한 5-6개 분야 만큼은 국내 5위권안에 들어가는 이른바 특성화 대학을 만들려는 프로젝트를 이미 시작한 상태였다.

계획은 명쾌했다. 좋은 교수와 우수한 학생이 어우러져 열심히 공부하는 학문의 전당을 만드는 것. 이를 위해 특별 대우하는 교수 5-6명을 뽑을 계획이다. 가칭 '특임교수'는 연봉을 다른 교수의 2배를 받고, 연구비도 우선 배정받는다. 신임 교수를 채용할 때 결정적 권한도 갖는다. 그렇게 하면 특임교수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특성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권 총장은 생각한다.

학생은 지금 수준이면 됐다. 경제학과의 경우 서울 강남 지역 고교의 5위 권은 돼야 합격한다. 용인으로 이전해도 학생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문제는 교육이다. 비책으로 교양 교육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대학본부 직할로 교양교육기획위원회를 만들어 교양 교육의 집행 기능을 주려 한다. 욕심 같아서는 1학년 전원에게 기숙사를 제공해 '코피 나도록' 공부하지 않으면 교양과정을 이수할 수 없도록 만들고 싶다. 용인캠퍼스에 2천 명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를 민자로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건설해 놓은 기숙사가 1천500명 규모이니 1학년 학생 5천 명 중 3천500명의 수용이 가능해진다.

교양 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정하지 않았다. 교양교육기획위원회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 권 총장은 머릿속에 '단국교양'을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를 갖고 있을 뿐이다.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목표는 사윗감, 며느릿감으로 삼고 싶을 정도의 학생들을 배출하는 것.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릿감, 사윗감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는 젊은이다. 철학이든 영화든 뮤지컬이든 대화 주제가 생기면 30분 이상 얘기할 수 있는 학생이면 된다. 건배 제의를 멋지게 할 수 있고, 외국인을 만나도 도망가지 않고 즐겁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총장이 할 일은 교수와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는 일이다. 연간 100억 원을 단국교양 브랜드화에 쏟아 부을 생각이다. 캠퍼스가 이전하면 그 정도 재정 여력은 생긴다 한다.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 교양교육의 핵심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교양서적 100선 등 어떤 책을 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읽느냐가 중요하다. 읽고 쓰기만으론 부족하고 듣고 말하기까지 연결돼야 한다. 그게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친정인 영남대에 대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처음 단국대에 와서 학생 수준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고 한다. 10여 년 전만해도 영남대 학생보다 못했는데 이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게 현실이다. 딱히 영남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확대로 생겨난 지방 대학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우리 사회 전체의 딜레마다.

그래서 영남대는 단국대 정도의 프로그램 변화로 유수의 대학이 될 수 없다. 특단의 대책, 비상 대책이 나와야 한다. 포항공대 정도로 만들려는 각오와 프로그램이 있어야 영남대 아니, 지방대가 산다. 영남대의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는 충분하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다. 그렇게 하려면 재원 확보가 우선이다. 최소 조 단위의 재원이 필요하다.

지역대학에 권 총장이 내놓는 해법은 엄청나게도 영남대와 대구대의 통합이다. 경북대와 영남대의 통합 얘기도 나오지만 그 보다는 영남대+대구대가 더 현실적이다. 영남대를 팔아 재정을 마련해 대구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시킨다는 아이디어로 교수를 대폭 확충하고 학생 수는 줄이되 면학 여건을 크게 개선하는 것이 골격이다. 노동부장관 시절 당시 김진표 교육부장관과 이와 관련된 깊이 있는 얘기도 나눴다. 하지만 재단이 전혀 다른 두 대학의 통합 작업에 엄두가 나지 않아 지역에서 말도 꺼내지 못했다. 권 총장은 그래도 "그런 파격적인 방식이라야 두 대학이 모두 산다."며 "만약 내가 두 대학 가운데 한 대학의 총장이라면 그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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