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이 먼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시조문학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대구·경북이 시조의 본향으로 거듭난데는 이호우(李鎬雨
·1912~1970) 시인의 삶과 문학적 발자취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호우·이우출·배병창·정완영·정재호·김상훈·정재익·김정자·유상덕·김종윤 시인 등이 1965년 4월 '경북시조문학동호회'(영남시조문학회)를 결성하고 몇해 후 동인지 '낙강'(洛江)을 창간하면서 향토의 시조문학은 낙동강처럼 유장한 행보의 기틀을 마련했다.
'영남시조문학회' 결성과 동인지 '낙강'의 창간은 대구·경북 시조단의 가장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60,70년대의 향토 시조계는 '낙강'이 중심이었다. '낙강'의 고유한 음영(吟詠)에 대구문단은 민족정신을 대변하는 시조문학의 요람으로 자리를 잡았고 조동화·조영일·김몽선·장식환·민병도·박기섭·이정환·문무학·노중석·채천수·이종문 등 역량있는 시조시인을 배출하면서 세력을 오늘에까지 이어오고 있다.
'개화'·'살구꽃 핀 마을' 등 교과서에서도 낯익은 수작들을 남긴 이호우는 향토 시조시단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대구·경북에서는 문학전문지의 공식적인 추천과정을 거친 첫 시조시인이었다. 타고난 문학적 기품과 조예를 지녔으며 이지적이고 사상적인 측면도 강했던 한국 시조문단의 거두였다.
김상훈 시인(전 부산일보 사장)은 "오누이 시조시인 이호우·이영도 선생과 더불어 민족시가의 저변확대와 현대화에 정열을 불태우던 일이 새삼스럽다"며 당시 대구시절을 회상했다.
이우출(李禹出·1923~1985) 시인은 이호우와 함께 향토의 시조시인을 규합해 낙강을 창립하면서 대구 시조 중흥의 기반을 마련한 문인이다. 6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종루'가 당선된 그는 수수한 옷차림에 능인고 교장시절 출퇴근 시간에도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녔으며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이우출은 학교 언덕바지 아래 골목 대폿집과 수도산 밑 삼거리식당에서 문우들과 종종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는 동국대 국문과 후배이면서 같은 문경 출신인 수필가 최정석과 동료 교사였던 시조시인 김장수와 '삼총사'로 불릴 만큼 자주 어울렸으며, 소설가 윤장근과도 허물없는 사이였다.
시조와 술과 더불어 풍류의 세월을 살다간 문인이었던 그는 대봉동의 노기(老妓)집에서는 기생의 노래에 장구 장단으로 응수를 했으며 육두문자 풍월 또한 최고의 경지를 자랑했다.
영남시조문학회 회장을 여러차례 역임한 정재익 시인은 "하룻밤에 10곳의 술집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술이 취하면 홀연히 일어서 술자리를 빠져나가곤 했다"며 "술값은 절대 양보없이 꼭 본인이 셈을 했다"고 회고했다.
75년경 파동 예술인촌에 살던 무렵에는 윤장근과 함께 술도가 앞에서 전배기를 구해다 마시기도 했다. 이 무렵 서석달·전상렬·김윤식·이재행·금동식·이수남 등과도 이따금씩 어울렸고, 경대 사대부고 부근에 있던 요정 다마네기집에도 들러 넉넉한 웃음을 남기곤 했다.
이우출은 85년 흰 고무신과 빈 술잔을 남겨둔채 흐르는 세월따라 멀리 이승을 떠났다. 소설가 윤장근은 "무가애의 삶을 실천한 문인이자 교육자요 종교인이었다"고 시인의 삶을 회고했다.
'청태(靑苔)빛 돌층대를/ 눌러앉아 솟은 다락// 서역길 문을 열어/ 범종이 울려오면// 새벽달 푸른빛 여울을 헤엄치는 저 여운'. 고향인 문경새재 입구 시비에 새겨진 이우출의 데뷔작 '종루'이다.
이우출과 함께 능인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유유상종 시조와 술을 즐긴 사람이 김장수(金章洙·1925~1976) 시인이다. 천의무봉한 주도(酒道)나 자유분방한 기질이 이우출과 난형난제로 꼽힐 만한 문인이다.
통이 크고 가식이 없어 술값도 잘 내었지만, 어쩌다 주머니가 후줄근하면 이우출과 박인술 같은 연장자에게 "헝놈아, 술 한 잔 사라"며 비음(鼻音)조의 애교(?)를 부렸다. 4.19 직후 교원노조 대구지부 중등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5.16 후 철창 신세가 되었다가 학교까지 그만 뒀다.
그래서 대구향교와 남문시장 사이에 샘터 대구지사를 차리고 참고서 판매를 시작했다. 허름한 행색으로 자전거에 책을 싣고 학교 도서관을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어쩌다 교문 수위에게 잡상인 취급을 받기라도 하면 "느그 교감을 불러라"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오면 부근 남미옥이나 도루묵집에서 앉아 술잔을 권했는데, 그날 업무는 그것으로 '땡'이었다. 이우출의 소개로 60년대 초에야 문단에 나온 김장수는 남산동 골목 술집에 한번 들어갔다 하면 큰 함지에 술을 가득 채워놓고 술잔에 별이 질때까지 마시곤 했다.
술병 탓인지 오십을 갓넘어 자리에 누운 그는 기어이 일어나지 못하고 겨울바람 을씨년스러운 대구시민회관 광장에서 문우들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권기호 문협 경북지부장이 주관한 첫 문인장이었다.
'뭍에도 못 오르고 江心에도 못 잠기고/ 갯벌에 자리하여 진흙에나 박혔다가/ 가는 달 외밝은 밤에 그림자나 띄우자'. 김장수가 남긴 '갈대'라는 시조이다. 오늘날 시조단의 최고 노익장은 정완영(88) 시인과 정재익(77) 시인이다.
주말이면 가끔씩 김천에 내려오는 정완영은 올해 초 미수(米壽) 기념 시조전집을 냈으며 심청전이란 서사구조를 시조 속에 녹여낸 '시암의 봄'이라는 역작을 내놓기도 했다. 희수(喜壽)의 정재익은 70년대 말 심신이 고단했던 한 때를 대변한 자신의 시조 '겨울바다'를 나직이 읊조려본다.
'풍랑을 앞세우고/ 늘 바다는 달려간다// 할말 있을 듯 있을 듯/ 말 더듬는 겨울바다// 동해여/ 가없는 파도여/ 잠긴 말의 가슴앓이...'.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