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낮 최고기온이 34℃까지 치솟은 지난 9일 오후. 두류공원 내 관광정보센터에 도착한 버스에서는 한 무리의 일본 여학생들이 재잘대며 쏟아져 나왔다. 한국인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의 이들은 한국의 불볕더위 앞에 도무지 속수무책인 표정이었다. "아쯔이!(더워)" "무시 아쯔이!(너무 더워)"를 연발했다.
이들은 대구 원화여고의 초청으로 대구를 방문한 히로시마의 히지야마(比治山) 여고생들. 8일부터 11일까지 자매학교인 원화여고 학생들과 한국문화체험을 하기 위해 온 참이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요."
이마이 아키나(今井曉菜·15) 양은 이날 오전 다녀온 가창면 우록리 녹동서원이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녹동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귀화해 큰 공을 세운 김충선 장군을 모신 곳. 대구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사적이다. 아키나 양은 "우리나라와 한국이 예전부터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며 "한지공예로 찻잔 받침대를 만든 일도 재미있었다."며 활짝 웃었다.
양국 학생이 일대일로 짝을 맞춰 홈스테이 식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서로가 양국의 문화를 가까이 보는 기회가 됐다. 옥지림(15) 양은 "일본인 친구와 백화점에서 순대, 떡볶이를 시식하고 태권도도 함께 배웠다."며 "간단한 영어로 대화를 했지만 하루가 지나니 눈빛으로도 말이 통할 정도로 친해졌다."고 했다.
한 일본인 학생은 "요즘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높다. 특히 한국 음식 문화에 대해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관심을 보였다.
옥 양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매일 밤 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한다고 하니 입시경쟁이 치열한 일본 학생들도 다들 놀라더라."면서 "잘 웃고 예의바른 일본 친구들을 보니 독도 분쟁으로 생긴 고정관념이 다 사라졌다."고 했다.
홈스테이는 양국 학생들이 '살'을 맞대고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 박인혜(16·달서구 용산동) 양과 키타가와 사키(北川沙樹·16) 양은 마침 박 양의 집에서 막 저녁식사를 준비중이었다. 메뉴는 전통 비빔밥. 전날 먹은 불고기와 상추 쌈도 일본에서는 접하지 못한 신기한 음식이었다. 사키 양은 한글도 곧잘 썼다. 얼마 전 말레이시아에 갔을 때 만난 한국인 학생들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했다. 사키 양은 "한국 학생들이 교실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분위기가 자유롭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양은 "지난 해 히지야마 여고에 다녀왔는데 작고 조용한 학교였다."며 "일본에서 생생한 체험들을 하고 나니 다른 나라도 더 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이번 교류의 절정은 사흘째인 10일 경주 행사. 양국 학생들은 이날 오전 불국사, 천마총을 둘러봤다. 시원한 냉면을 먹을 때는 '오이시!(맛있다)'를 연발했다. 불전함에 돈을 넣거나 불당에서 다 함께 절을 하는 모습은 일본인 학생들의 눈에 신기하게 비쳤다.
이날 저녁에 열린 '한·일 합동공연'은 흥겨운 교류마당이 됐다. 한국 학생들은 꼭짓점 댄스와 부채춤을 보여줬고 일본 학생들도 민속 무용으로 화답했다. 김숙희 일어과 교사는 "일본 학생들이 공연 전까지 내용을 비밀로 해 분위기가 더 고조됐다."며 "한국 학생들은 일본 학생들의 장점을 배우면서 적잖은 자극을 받았고 일본 학생들도 한국학생들을 더 잘 아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원화여고처럼 해외 학교와 자매관계를 맺고 정기적인 교류행사를 갖는 학교는 지난해 기준으로 대구에만 48개 교. 대구시 교육청도 올 가을 중국 심양 교육청과 교류협정을 추진하는 등 활발한 국제교류를 추진중이다.
이러한 행사들은 언뜻 일회성 이벤트로 보이지만 해외 교류행사에 참가한 학생.교사들의 반응은 훨씬 호의적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오하이오주 피터 스쿨, 미국 오레곤주 닐 암스트롱 중학교, 일본 후쿠오카 가나다께 중학교 등 3개 학교와 교류하는 대서중의 경우 올 가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올해 초에는 닐 암스트롱 중학교 학생 10명이 대구를 찾아 수업참관, 홈스테이 체험을 하기도 했다.
정규성 교사는 "낯선 문화를 뛰어넘어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것도 청소년이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짧은 기간이나마 해외 체험을 한 학생들은 사고의 폭도 넓어지고 진로 결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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