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결자해지'없이 한일외교 한 페이지 넘겨

고이즈미 8.15 참배...정부, '분노' '허탈' 속 새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5일 예상대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함에 따라 그의 재임시절 악화일로를 걸었던 한일관계는 끝내 수습되지 못한 채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종전(終戰) 기념일인 이날 오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고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의 규탄 성명을 발표하는 한편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항의의 뜻을 전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17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한일간 정상외교의 사실상 중단으로 이어지더니 결국은 야스쿠니 문제가 고이즈미 총리 시대의 마지막 시점까지 양국관계의 발목을 잡게 됐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고 퇴임하는데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정부는 충분히 예상됐던 일인 만큼 '역시나' 하면서도 그간 거듭된 설득이 먹혀들지 않은데 따른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는 지난 달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계기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더 이상 한일 관계에 부담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데 이어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이 8일 고(故)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 장례식에 참석차 일본에 갔을 때도 참배자제를 거듭 촉구했다.

올들어 교과서검정, 해양조사, 대북 결의안 등 휘발성 높은 사안들로 나빠질대로 나빠진 양국 관계는 다음달 고이즈미 총리의 퇴임시점까지 냉기류를 유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차기 일본 총리를 뽑는 다음달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금이 새롭게 양국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때인 만큼 이번 참배 파문이 장기화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따라서 정부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정해진 수순의 대응을 마치면 야스쿠니 문제와 관련한 신임 총리의 태도가 구체화될 때까지 차분히 지켜보는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는게 외교가의 조심스러운 관측이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 최악으로 내달렸던 한일관계를 새롭게 풀어가야 하는 마당에 새 총리 출범을 앞두고 야스쿠니 문제가 계속 양국관계의 발목을 잡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우리 정부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야스쿠니 문제로 양국간 갈등이 계속되는 와중에 대 아시아 외교를 경시하는 일본 내 일부 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새 총리가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해도 운신의 폭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정부도 감안하고 있는 부분이다.

또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과 야스쿠니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도 그간 고이즈미 총리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타 정치인들을 구분해 대응하면서 '포스트 고이즈미' 시대를 대비해 왔다는 점도 정부로서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 퇴임 후 일본에 새 내각이 출범하면 중.일간 서로의 필요에 의해 급속도로 관계 정상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있는 만큼 우리도 감정적 대응보다는 전략적이고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정부 안팎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다시 말해 새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전임자와 다른 길을 갈 가능성 이 있는 만큼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서는 항의하되 새 총리의 행보는 기대를 갖고 지켜보자는 쪽이 정부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신임 일본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의 경우 신념 상으로는 야스쿠니 참배를 한다는 쪽이지만 아시아 외교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차원에서 참배에 대해 전임자와 다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 봤다.

그는 이어 "아베 내각이 출범한다면 그 계기로 중국과 일본이 전격적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있는데, 한국이 너무 강하게 일본을 몰아부치다 보면 입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마지막 참배에 대해 할말은 하되 이번 일로 인한 한일간 갈등이 장기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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