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간모세포종 앓고 있는 정희원 군

까만 눈동자가 유난히 빛나는 희원(20개월·경북 김천시 부곡동)이. 손을 버둥거리며 혀 짧은 소리로 '아빠'를 부른다. 병상 난간에 기대앉아 조막손에 볼펜을 든 채 스케치북에 낙서를 하다 볼펜을 놓쳐서다. 정재식(35) 씨는 병상 아래로 허리를 숙여 볼펜을 주워준다. 볼펜을 건네주다 희원이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어주지만 얼굴에 진 그늘은 지우기 어렵다.

희원이의 간에는 암세포가 도사리고 있다. 병명은 악성 간 종양인 간모세포종. 어린아이들에게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병인데 지난 3월초 공교롭게도 희원이에게 이 병마가 찾아들었다. 희원이가 처음 찾은 인근 병원 의사조차 짐작치 못한 일. 태어날 때 몸무게(3.4㎏)도 정상인데다 잘 놀고 잘 자던 아이라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하루는 아내가 희원이 목욕을 시키고 몸을 닦아주는데 배 오른쪽에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졌습니다. 집 근처 병원에 가 봐도 별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얼마 뒤 덩어리가 더 크게 만져지더라고요. 대구로 나와 큰 병원을 찾았더니 각종 검사 끝에 간모세포종이라 하더군요."

정 씨는 날벼락을 맞은 듯 했다. 피검사를 할 때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곤 했지만 상태가 이 정도 줄은 몰랐던 것. 병마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희원이는 어른들도 견디기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6번이나 받았다. 당초 네 번 치료를 받은 뒤 종양제거 수술을 하려고 했지만 담뱃갑 크기의 암세포가 쉽게 작아지지 않았기 때문.

희원이는 일란성 쌍둥이다. 동생 이름은 희정이. 희원이 형제는 정 씨 부부가 희철(8·초교 2년)이를 얻은 뒤 딸을 하나 낳고 싶다는 생각에 아기를 가졌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아이들. 정 씨의 한달 월급은 150여만 원. 이 돈으로 세 아이에, 아버지까지 감당하긴 쉽지 않았음에도 잘 커주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든든했고 '복 받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희원이가 쓰러진 뒤 모든 것이 변했다.

TV부품 생산 공장에서 일하던 정 씨. 그는 희원이가 병원 생활을 시작한 직후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아내가 희원이 곁을 지키게 되면서 집에 남은 희철이, 희정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였다. 집에서 희원이에게 줄 죽을 끓여 대구로 나올 때면 희철이가 희정이를 돌봐야 했다. 정 씨 아버지(71)가 있지만 몸이 편치 않은 터라 도움이 못됐다.

"희철이에게 여러모로 미안하죠. 아직 한참 엄마 손 탈 꼬마인데 제 동생 옆에 붙어 있어야 하니까요. 그나마 같이 잘 놀아주고 예뻐해 주니 다행입니다. 갑자기 동생이 둘이나 생겼다고 좋아하던 녀석인데 벌써 짐을 지워주게 돼 안타깝네요. 희원이가 보고 싶다고 할 때면 곧 집에 간다고 달래곤 합니다."

아이 옆에 붙어 있느라 제 때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정 씨의 아내 신려(32·중국 한족 출신) 씨. 부부는 상의 끝에 처가에 부탁, 이달 초 정 씨의 처남댁이 중국에서 건너왔다. 아이들끼리 지내는 것보다는 말은 안 통해도 어른이 옆에 있는 것이 낫다고 본 것. 일주일에 서너 차례 희원이가 먹을 죽을 끓여 들고 김천과 대구를 오갔던 정 씨는 이후 아내와 함께 희원이 곁을 떠나지 않는다.

희원이는 곧 종양제거수술을 받는다. 이후 또 항암치료 두 차례가 기다리고 있다. 이에 따라 병원비도 1천여만 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조그만 아파트를 얻느라 진 빚 4천여만 원도 갚기 벅찬데 병원비 생각만 하면 정 씨는 정신이 아득해진다.

"한 배에서 함께 난 제 동생은 괜찮은데 희원이는 왜 이리 됐는지…. 제가 끓여온 죽도 잘 못 먹네요. 아직도 현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퇴근한 뒤 세 아이들과 엉겨 놀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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