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름없는 조상魂 달래준 은혜 못잊어"

명량해전때 숨진 日 수군 후손들 진도 왜덕산 찾아 감사 추모행사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한 뒤 숨졌다가 전남 진도 주민들에 의해 양지바른 곳에 묻힌 일본 수군의 후손들이 광복절인 15일 '보은의 진도 방문'을 했다.

일본 시코쿠 에이메현 이마바리 지역 출신으로 정유재란에 참전한 구루시마(來島) 장군 현창 보존회 임원과 히로시마 수도대학 교수, 학생 등 21명은 이날 오후 왜군의 묘 50여 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고군면 내동리에 있는 '왜덕산(倭德山)'을 찾아 참배했다.

이날 참배에서 일본 승려의 독경에 이어 원무(圓舞)를 추며 조상의 명복을 비는제사 의식인 봉오도리(위안 춤) 등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들은 참배에 앞서 마을 주민들에게 "적군의 주검을 수습해 묻어주고 지금까지잘 관리해줘 너무 고맙다"면서 선물 등을 전달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당시 진도 주민들은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한 뒤 울돌목의 거센 물살에 수장됐다밀물에 떠밀려 온 일본 수군 100여구의 사체를 수습, 마을 언덕에 장사를 치러줌으로써 원귀가 될 뻔했던 이름없는 왜군들의 넋을 달래줬다. 진도군 고군면 내동리에 있는 이 언덕은 '일본군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뜻에서 ' 왜덕산(倭德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진도 향토사학자인 박주언(61)씨가 내동리 주민 이기수(80) 씨의 증언을 듣고 2004년 '진도사람들'이라는 잡지에 기고하면서 외부에 처음 알려졌다. 이번 방문은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 수도대학 히구마 교수가 진도를 방문했다가 박씨로부터 왜덕산 사연을 구루시마 장군 후손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이뤄졌다.

구루시마 장군은 왜선 400여 척을 지휘한 6명의 장군 가운데 1명으로 충무공의 전술에 말려 2천500여 명의 병사들과 함께 명량해역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왜덕산 공동묘지는 개간 과정에서 일부가 멸실되고 현재 칡넝쿨에 싸인 채 방치돼 있어 정확한 확인이 어렵지만 왜군의 묘 50여 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씨는 "왜덕산 공동묘지는 국가간의 전쟁 와중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 우리 민족의 도덕성을 상징하는 증거"라며 "왜덕산에 대한 구체적인 사료 발굴과연구를 통해 한.일간 우호를 높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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