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법조 비타민) ①사면복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지만 법은 우리 생활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검찰과 법원 출두가 어느 순간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사법부나 정부기관의 법률적 조치가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심사를 뒤틀리게 할 수도 있다. 또 미리 알고 보면 '아하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익한 사안들도 많다. 이에 따라 법원과 검찰, 유관 기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법률적 지식과 연계해서 재미있게 알아보는 '법조 비타민'코너를 마련했다.

IMF 외환위기로 당시 재계 서열 28위의 청구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장수홍 전 회장은 1998년 6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5년을 만기복역했다.

당시 장 전 회장의 만기 출소를 두고 정.재계에선 '정권에 밉보였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았다. 사실 재계 인사들이나 정치인 등이 제대로 형기를 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최근 정부의 광복절 사면을 앞두고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0년부터 현재까지 조세포탈, 횡령, 불법대선자금수수 등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 고위층 131명을 분석한 결과 정상적으로 복역한 사람은 19명에 불과했다.

이런 예에 비춰 보면 (실제 당연함에도 불구하고)만기 복역이 장 전 회장 본인에겐 억울하게 비쳤을 수도 있다.

이들이 형기를 모두 채우지 않고 도중에 교도소 밖으로 나오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사면이다.

이는 형(刑) 선고 효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시키거나 형의 선고를 받지 아니한 자에 대해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눈다. 특정 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의 죄를 죄 짓기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전자로 국회 동의가 필요하며, 후자는 특정인에게 남은 형의 집행을 면제해주는 것으로 사실상 대통령이 결정한다.

복권은 선거권, 공무담임권 등 법적권리를 죄를 짓기 이전 상태로 환원하는 것을 말한다. 사면만으로는 법적권리 회복이 안되기 때문에 행하는 구제 절차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행한 광복절 사면.복권을 두고 말들이 많다. '본연의 취지보다는 대통령 측근 살리기'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씨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 당선자 비서실장을 지낸 신계륜 전 의원,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 등이 대상이다. 이로써 노 대통령의 당선에 공헌했던 사람들은 그동안의 조치로 모두 혜택을 받은 셈이다.

물론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인사들과 일부 재계 인사들이 포함돼 있지만 이번 사면.복권의 핵심은 노 대통령의 측근들이었기에 비판의 수위가 높은 것이다.

사면은 3.1절, 석가탄신일,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성탄절과 새 정부 출범 때 이뤄지는데 통상 1년에 한번 정도 실시된다. 하지만 참여정부 하에서는 이번이 여섯번째 사면이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너무 잦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고도의 정치행위인 사면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긴 하지만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점은 분명하다.

대통령 측근이라서 풀어주고, 분식회계나 횡령, 자금세탁을 통한 불법정치자금제공 등을 해도 경제인이라서 석방하는 관행이 되풀이 된다면 애초부터 수사와 재판을 할 이유가 없다. 검찰과 법원이 대대적인 사면에 비판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들도 '유권무죄' '무권유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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