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낮 대구 동구 효목동 대구지체장애인협회 사무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할머니가 장애인들 틈에 앉아 있었다.
"처음 뵙는다."며 인사를 마친 할머니는 흰봉투를 내밀었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렵게 사는 장애인들을 위해 써달라."고 말했다. 봉투 안에는 900만 원이 담겨 있었다.
협회 직원이 할머니 손을 꼭 붙잡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봉투를 들고오기까지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정성란(82·대구 수성구 두산동) 할머니. 아직도 은퇴를 하지 않았다는 그의 직업은 '고물상'이다. 매일 오전 7시면 어김없이 파지를 모으기 위해 리어카를 밀고 집을 나선다. 벌써 20년째 같은 일과가 이어지고 있다.
"종이를 많이 찾으면 하루 3천500원, 운수 좋은 날은 4천 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죠. 4천 원 번 날은 정말 날아갈듯이 좋아요."
할머니는 17세에 시집을 갔다. 시집온 지 3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들이 네 살 때 6·25가 터졌고, 남편은 전장으로 나서야 했다. 2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남편을 기다린 보람도 잠시. 휴전 후 돌아온 남편은 전쟁 후유증인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참 웃으면서 이야기를 잘 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놓으면 미친듯이 나를 때렸어요. 온몸에 멍이 들도록 맞으면서도 매를 이겨냈는데…." 남편은 결국 4년 뒤 세상을 떴다. 아들을 키워야 했다. 여름엔 아이스크림 장사, 겨울엔 검은 고무줄 장사를 했다.
"평생 점심 때 수제비만 먹었습니다. 돈을 아껴야 했으니 밥을 사먹을 수 없었죠. 수제비도 사실 저에겐 사치였습니다."할머니는 먼저 떠난 남편이 자꾸만 생각나 죽기 전에 장애인들을 위해 무언가 꼭 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들도 대학까지 보내 독립시켰고, 이제 남편을 위해 무언가 조그만 일도 하긴 했는데…. 너무 부끄럽습니다. 돈이 적어서…."
신경통이 심해지고 날씨도 더워 요즘 파지 줍는 수입이 줄었다는 할머니는 봉투에 더 많은 돈을 넣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더욱이 그 힘든 일을 하며 번 돈을 장애인을 위해 아낌없이 주시다니, 너무 고맙습니다. 할머니의 900만 원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900만 원 입니다." 대구지체장애인협회 김창환 회장은 죽을 때까지 잊지못할 후원자로 기억할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일할 거예요. 힘이 있는데 왜 쉬어요? 그리고 파지 줍는 일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할머니는 어렵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용기있게 베풀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대구지체장애인협회는 회원들 가운데 가장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 45명에게 할머니의 기부금을 나눠주는 한편, 조만간 정식으로 전달식을 열 예정이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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