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에세이] 노약자석에 앉아서 가는 사람들

나는 老弱者席(노약자석)에는 잘 앉지 않는다. 간혹 그 자리가 비어 있어도, 비어 있는 자리를 건너뛰어 일부러 뒷자리로 간다. 아직까지는 내가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을뿐더러, 또 남들로부터 노인 대접을 받기도 싫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무렵의 시내 버스는 한산했다. 서서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한물 지나간 뒤인지라, 이 시간의 버스 승객은 백화점에 가는 주부들과, 무슨 문화회관 경로교실 같은 곳에 가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때 승객의 평균 연령은 9시 이전 승객의 평균 연령보다는 현저하게 높다.

그날 내가 우리 집 앞에서 이 버스를 탔을 때는 노약자석 한 자리만 달랑 비어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어서,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빈자리에 앉았다.

이때는 노약자석이 따로 없다. 서서 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 이 자리에 앉더라도 흉잡을 일이 아니다. 차가 시외버스 정류장을 통과하자, 백발의 노파가 올라왔다.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의자에 내가 앉아 버렸으니, 빈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還甲(환갑)을 지났어도, 요즘 여자들은 머리에 염색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지나쳐 보고서는 나이든 사람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누가 보아도 한눈에 파파노인이다.

노인은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서, 한 손에는 제법 큼직하게 보이는 보따리를 들고 있고, 또 다른 한 손에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우산을 들고 서 있다. 차가 움직일 때마다 자꾸 뒤뚱거리는 것을 보면, 몸을 가누기가 힘드는 것 같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 앞뒤가 다 노약자석이다. 그래서 나는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정장 차림의 30대로 보이는 남자는 조는 듯이 눈을 감고 있고, 중년의 여자 한 사람은 아예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나는 잠깐 노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보다는 나이가 좀 많아 보여서 자리를 양보하려고 했으나, 내가 나이 든 사람으로 보였던지 노인은 한사코 사양했다. 자기는 집 안에서 늘 앉아서 지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운동삼아 서서 가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좀 멋쩍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노인이 들고 있는 보따리만 받아 내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그리고는 누군가가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 사람이 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갔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서너 정거장을 지나도록 이 노인에게 자리를 讓步(양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나는 빈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야 할 때는, 될 수만 있으면 젊은 사람 옆에는 서지 않는다.

내가 노약자이니 어쩌면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몸짓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이런 일로 공연히 젊은 사람의 마음을 불안케 하여 조는 것처럼 눈을 감게 하거나, 아니면 까닭없이 창 밖을 내다보게 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요즘 시내 버스는 참 좋아졌다. 옛날과 같은 콩나물 시루 버스도 아니고, 냉난방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과거와 같은 동태 버스도 찜통 버스도 아니다. 최근에는 또 버스와 버스, 버스와 지하철 간에 무료 환승제도가 시행되면서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리고 여기에는 빠짐없이 노약자석을 따로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그날처럼 여기에서 정작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내 돈 내고 내가 타고 가는데 누가 무슨 상관을 하느냐고 따지고 든다면 할말이 없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냉방에 난방에 무료 환승에, 물리적인 여건이 아무리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버스와 지하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情(정)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릴 것이다. 나라 상감님도 늙은이 대접은 한다는 말을, 여기에서만은 결코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이야기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이주희(수필가·전 원화여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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