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안 천리를 가다](26)감포 송대말

소나무숲·푸른바다·기암절벽 '천혜의 庭園'

소나무가 많은 육지 끝 부분이라는 뜻의 송대말(松臺末). 이곳은 감포 사람들에게 특별한 곳이다. 요즘 같은 폭염에도 송대말에 가면 언제나 바람이 솔솔 불어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그만이다. 남녀 할 것 없이 어릴 적에 이곳 앞 바다에서 고기를 잡거나 해수욕을 했고, 친구들과 이야기 꽃을 피워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또 등대가 있어 뱃사람들도 꼭 기억하는 곳이기도 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의 송대말=포항과 경주 경계에서 해안선을 따라 난 왕복 2차로의 31번 국도를 따라 감포항 쪽으로 달리다 보면 바닷가로 툭 튀어나온 땅과 그 위에 울창한 송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몇 해 전 감포읍내를 우회하는 도로가 생기면서 이용자가 크게 줄었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도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포읍내를 지나 울산이나 구룡포 쪽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해변의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의 모양이 펼쳐놓은 비단을 자로 재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척사(尺紗)에서 감포항 쪽으로 국도를 따라 선창곡 고개 커브길에 송대말 등대를 알리는 안내표지판이 있다. 이 길로 바다 쪽으로 500m 떨어진 등대를 찾아가노라면 온통 해송들이다. 3천800여 평의 땅에 200년의 세월은 거뜬히 넘겼을 아름드리 해송 150여 그루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그늘을 만들었다. 마을로 날아드는 소금기를 막아 주고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김녕 김씨 충의공파 문중림이다.

후손인 김진술(54) 씨는 "예전에는 문중 어른들이 세상을 떠나면 이곳 해송을 베어 널을 짰다고 해 '널 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며 "어릴때만 해도 이곳에 해송들이 빽빽하게 찰 정도로 울창했지만 태풍 사라와 매미때 제법 많은 나무들이 쓰러졌다."고 회상했다.

정병주(55·감포읍) 씨는 "감포사람이면 이곳에 와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추억이 있는 특별한 곳"이라며 "세상에 어디에 이만한 천혜의 정원이 있겠느냐"고 자랑했다.

처녀시절인 18세 때 어른들 몰래 친구들과 이곳에 놀러 갔다 찍은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최분순(85) 할머니는 "노송의 울창한 숲과 동해의 푸른바다, 기암절벽이 한데 어우러진 곳으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은 오래전부터 공원지역으로 묶여져 있다. 그런대도 화장실과 식수대 등이 없어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감포사람들은 이곳을 공원답게 잘 조성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외롭지만은 않은 송대말 등대=송림 끝 바다쪽에 서 있는 송대말 등대는 여느 등대와 마찬가지로 늘 바닷가를 향해 서있지만 그렇게 외롭지는 않다. 푸른 소나무 숲과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외에도 짝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곳에는 2개의 등대가 나란히 서 있다.

이곳 등대의 역사는 1933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에 개항한 감포항은 동해남부의 중심어항으로 제법 큰 항구였다. 이 항의 위치와 항 입구에 널려있는 암초와 장애물 등을 표시하고 연안을 항해하는 선박의 중요한 지표역할을 하는 연안표지로 1933년 감포어업조합은 등간(燈竿)을 만들어 운영했다. 일제 강점기때인 그때에는 사각의 철조 기둥으로 급조해 밤에는 부동렌즈 전등을 하나 단 정도였다.

그 뒤 1955년 6월 원형 콘크리트 등탑으로 개량했지만 무인등대였고 1964년부터 유인등대가 됐다. 안개가 낄 때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한 이때 등명기(등대의 불빛을 내는 기계)를 증강하고 등대원이 처음 근무하게 됐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고 이 등대는 2001년 12월 옆자리에 새로 만든 등대에 자신의 역할을 넘겼다.

현재 사용중인 등대는 문화관광도시인 경주의 특성을 살려 무신호실과 사무실, 전시실이 있는 1, 2층은 신라시대 건축양식인 회랑과 맞배지붕의 이견대를, 3~5층의 등탑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형상화해 만들었다.

박영식(56) 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지역을 상징할 수 있는 건물형태를 항로표지에 도입했다."고 말했다. 박 소장과 등대원 이금용·김정환(33) 씨 등 3명이 8시간씩 교대근무를 하는 이 등대는 주위에 암초가 많다. 그래서 동해안에는 울산 화암추등대와 함께 2군데뿐인 빨간색 섬광이 있다. 보통 흰색이지만 더욱 조심하라는 뜻에서 흰색과 빨간색 섬광이 34초를 주기로 번갈아 돌아간다.

예전엔 어부들이 바다 한가운데 그물을 던져주고 별의 위치를 보고 다시 그곳을 찾아 갔지만 요즘엔 성능 좋은 위성항법정보시스템(DGPS)을 도입해 자신이 던진 그물과 오차거리가 1m가 될 정도로 정확해 졌다고 한다. 이금용(49) 등대원은 "어선에 장착된 기계들이 나날이 첨단화되어 가고 있지만 등대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어민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경주·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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