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파키스탄 출신 셰크 레이스씨의 '한국인으로 살기'

'외국인 근로자.'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로 살아가기는 참 어렵다. 열심히 일하며 당당하게 살고 있지만 주위의 시선이 영 부담스럽다. 파키스탄 출신 셰크 레이스(37·Shaikh Rais) 씨도 한때는 외국인 근로자였다. 하지만 그에게 이제 그런 수식어는 없다. 한국인이 됐기 때문이다.

2년 전 그는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김부성. 그의 한국이름이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김 씨 성에 본관은 '주례'로 정했다. 주소지인 부산시 사상구 주례동에서 따왔다. 당연히 '주례 김씨'의 시조가 됐다. 주례 김씨는 아들 재백(7)이와 딸 수완(3)이를 포함 전국에 3명뿐.

한국 거주 15년째인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정서를 타고났다. 8년 전 정유정(38) 씨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 이젠 두 자녀의 든든한 아빠이자 경제력 있는 가장, 장모를 모시고 사는 100점 사위 등 여느 한국인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김 씨의 '코리안 드림'은 이렇다. 그는 21세에 파키스탄에서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한국으로 찾아왔다. 처음으로 대구에 발을 디딘 그는 염색공단 등에서 4년간 일하며 알뜰히 돈을 모았다. 돈이 모이자 결혼할 무렵 부산 사상터미널 근처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다. 이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이내 인도풍 식당을 꾸려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 IMF 때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아 빚을 내야 할 정도로 어려움에 쪼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의 김 씨는 무수히 찾아오는 어려움을 특유의 친화력과 인내심으로 잘 버텨냈다.

1년 전에는 대구 북부정류장 맞은편 거리에서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라는 식당을 내고 서남아시아 외국인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해주며 손님들을 끌고 있다. "돈을 많이 벌었냐?"고 물으면 "다 빚이야, 요새 장사 잘 되는 데가 어디 있는교?"라며 너스레를 떤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영판 본토박이다.

그의 결혼 스토리 역시 재미있다. 1998년 5월 대구에 일이 있어 왔던 아내를 두류공원 앞에서 본 김 씨는 무작정 다가가 "너무 예쁘다.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다가 제대로 퇴짜를 맞았다. 인연이었을까? 보름쯤 뒤 부산역 앞에서 둘은 우연히 또 만나게 됐다. 정 씨는 못 이긴 척 전화번호를 줬으며 그 뒤로 둘은 3개월 동안 10여 차례 만난 뒤 결혼에 골인했다.

김 씨 가족은 1년에 한 번은 아빠의 고향을 찾아간다. 파키스탄에서 한 달가량 휴식을 즐기며 친척들을 두루 만나고 여행도 즐기는 것. 아내 정 씨는 "파키스탄은 영국식 교육을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2, 3년 정도는 유학을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김 씨가 이만한 행복을 얻기까지는 어려움도 적잖았다. 귀화한 한국인임에도 피부색 때문에 늘 낯선 외국인 취급을 당하는 것이 아쉬웠다. 가끔 반말이나 욕을 들을 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다음해 재백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걱정이다. "아빠는 파키스탄인"이라고 놀림을 당할 것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걱정도 김 씨 가정의 행복을 가로막는 아무런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제 김 씨는 모범적인 외국인 가정의 본보기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는 파키스탄 부대통령, 장관, 방송인 등을 집으로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김 씨는 "대구, 서울, 부산 등 대도시를 오가며 15년 동안 고생한 보람이 이제 찾아오는 것 같다."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아들, 딸이 커가는 걸 보면 흐뭇하다."고 웃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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