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신 외국인거리로 떠오른 북부정류장 인근에서 살아가는 낯선 이방인들. 주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이들은 어려운 현실이지만 강한 유대감으로 대구의 한쪽에서 터전을 잡아가고 있다. 한 발 더 다가가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지난 14일 밤 9시 대구 북부정류장 식료품 가게인 아밀(37·파키스탄인) 씨의 가게 앞. 서남아시아계 외국인 10여 명이 모여 있다. 이들은 주로 대구 성서공단, 3공단 등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이다. 요즘은 야간 잔업이 없어 밤이면 이렇게 하나둘 가게로 모여든다.
먼저 가볍게 포옹한 뒤 주먹을 양쪽으로 마주치는 독특한 이슬람식 인사를 한 뒤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아따, 요새 일도 없고 힘들다."는 한국말도 오간다.
대구 염색공단에서 일하는 아프답 알람(32) 씨는 "예전에는 야간이나 주말에도 일했는데 요즘은 오후 6시면 바로 퇴근한다."며 "보너스나 수당이 없어 괴롭다."고 털어놨다. 3공단에서 일한다는 맘마드 자베드(30) 씨도 "일 마치고 북부정류장 인근 거리에서 노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했다.
밤 9시 30분 북부정류장 앞 도로 건너편 가게인 히나 트레블스. 여행 및 해운 대행업소 사무실인 이곳에서는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받은 귀화인 한야신(33) 씨와 한국인 부인에게서 난 딸 히나(4) 양이 손님을 맞는다. 대구시 달서구 죽전네거리에 위치한 대구 이슬람사원의 성직자인 모하마드 이시팍(26) 씨와 중장비 취급업체인 마리아 국제무역 대표 아킬 얼 레헤만(37) 씨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시팍 씨는 "무슬림들은 매주 금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사원에서 예배를 드리며 하루에 5번씩 기도를 한다."며 "돼지고기나 술은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고 그들의 생활을 전했다.
레헤만 씨는 "근로자들은 대체로 방 두 칸 월세방에서 4, 5명씩 어렵게 살아가지만 한푼이라도 아껴가며 저축하는 재미에 산다."고 말했다.
이들이 저축하거나 고향으로 보내는 돈은 1개월에 70만~80만 원 정도. 이들 외국인 일반근로자 대부분의 월급이 100만~120만 원(특별한 기술이 있을 경우 140만~150만 원) 남짓인 걸 감안하면 월급의 70% 이상을 저축하는 셈이다. 집세 10만 원 정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은 20만~30 원. 이 금액이 먹는 것부터 시작해 생활비의 전부다.
하지만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정작 돈이 아니다. 생활하며 겪는 어려움이 더 크다. 귀화한 외국인들 역시 한국민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게 현실. 잘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한국인들로부터 반말, 욕설을 듣는 경우도 너무 흔하다.
식당 인디아 게이트에서 만난 짐미(35) 씨는 며칠전 일자리에서 쫓겨났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주인이 "내 말 안 들으면 잘린다. 무조건 내 말 들어."라는 얘기를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들었다고 했다. 일자리가 없어 친구 아밀의 가게를 돕고 있는 마모드(33) 씨는 "일자리가 없어 다음달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취미생활은 거의 없다. 술을 마시지 않는 이들은 편의점 형태의 마트에 자주 들른다. 이곳이 이들의 주된 생활공간. 이곳에서 이들은 인터넷(30분당 1천 원)으로 메일을 보내거나 자국의 소식을 확인한다. 또 휴대전화를 대여받기도 하고 국제전화를 싸게 걸 수 있는 나라별 전화카드도 이곳에서 산다.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한국인 주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북부정류장 입구 에이스 마트 주인 문경임(45) 씨는 "유동 외국인들이 하루 수백 명에 달하기 때문에 이들을 도와주며 장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최근 1, 2년 사이에 이 같은 가게가 5, 6군데 더 생겨났다."고 밝혔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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