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이 王朝(왕조) 시대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임금이라면 언론은 어떤 형식으로 기사를 써야 할까. 요즘 기자나 논객들은 왕조 시대로 치면 言官(언관)이나 臺諫(대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니 상소문 형식의 비판이나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꼽아 보라'는 말씀 등 이런저런 노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살펴볼 때 왕조 시대였다면 지금의 언론보다도 훨씬 더 신랄한 상소가 올라왔으리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오늘 칼럼은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왕조 시대로 돌아가 가칭 '盧宗(노종)' 임금께 드리는 상소문으로 구성해 보자.
낮은 지지율을 고민하며 국민과 공기업 기관장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외로워하는 지도자에게 남은 임기나마 국정을 잘 살펴 주십사는 충정으로써 진언 드린다.
"전하, 일찍이 나라에 언로가 막히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고려 때 대간은 이를 두고 言路閉則 亂且亡(언로폐즉 난차망)이라 일러, 비록 임금이라 하더라도 잘잘못을 직언하는 충언을 외면하면 나라가 성할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연산군 때조차도 이런 상소가 있었습니다. '전하의 미덕만 칭찬하고 전하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臣(신)들 역시 간사스럽고 아첨하는 간신이 될 것이고 차라리 꺼리지 않고 말한 죄로 죽임을 받을지언정 감히 전하의 잘못을 덮어두고 아첨하여 전하를 그르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전하, 언관의 입이란 본디 언관 혼자의 입이 아니라 백성의 입이요, 제멋대로 지껄이고 상소를 올리는 듯하나 다 민심을 살펴 담아 옮기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으나 실은 바로 전하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그것이 바로 전하의 잘못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아무 잘못이 없다 하시면 백성들은 전하를 보고 '그러면 우리는 무얼 잘못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꼽아 보라, 할 것입니다. 전하, 자고로 임금은 비가 안 오고 가뭄이 들어도 하늘 탓 대신 자신의 부덕이라 탓하고 제단에 머리를 숙여야만 聖君(성군)의 칭송을 듣는 존재였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워진 탓을 언론 탓, 반항하는 관료 탓, 고집불통 북한 탓, 부시 대통령 탓으로 돌리고 나는 잘못한 것 없다 하시면 어느 백성이 전하를 성군이라 하겠습니까. 전하, 네 탓이오는 그렇다 치더라도 私情(사정)에 이끌리어 국정을 그르치지는 마셔야 합니다. 군주의 사사로운 정을 경계한 왕조 때의 수많은 상소중 한 가지만 더 뽑아 올립니다.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기 전에 같이 놀던 옛 친구와 친한 부하, 근친과 노복 무리에 이르기까지 틈을 보아 은총을 바라는 사람들이 나올것입니다. 그런 자 가운데는 임금의 기색을 잘 살펴 그 뜻을 맞추고 감언이설과 교묘한 술책으로 군주의 기쁨에 영합하여 은혜를 팔고 군주의 노여움을 부채질하여 자신의 세력을 떨칩니다.'
꼭히 '바다이야기' 구설이 아니어도 참으로 새겨들어야 할 충언입니다. 지금 전하 주변에서 언론의 보수 논조에 대한 노여움을 부채질하여 언론을 적인 양 못마땅히 여기게 하는 건 아닌지도 민초는 저어스럽습니다.
인사는 또 어떠하옵니까. 왕조 때도 3배수 추천제가 있었지만 1위인 首望(수망)이나 2위인 亞望(아망) 대신에 3순위 三望(삼망)를 찍어 임명하거나 제3의 인물을 뽑으려 할 때 시원찮은 인물이면 반드시 대간들이 들고 일어나 부당함을 따졌습니다. 하물며 민주국가의 지도자인 전하께서 코드인사 논란을 따지는 언론을 탓해서야 어찌 성군이 되겠습니다.
전하, 성군의 길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먼저 겸허하소서. 무엇을 잘하고 잘못했는지를 셈하는 그 자체도 삼가소서. 자만이 옵니다.
온 마음을 다 비우소서. 전하의 귀만 간지르는 측근을 가려 솎아내시고 '내 탓이오'로 가슴을 두드리소서. 그러면 이 나라의 국운을 되살림에 있어 노루 꼬리 같은 1년 반 세월도 소털같이 긴긴날이 될 것이옵니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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