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늘을 찌를 듯 수십 층씩 올라가는 아파트群(군)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아파트 이름이 하나같이 영어 이름이거나 우리말을 영어 발음처럼 풀어쓴 것들이다. 게다가 이름 길이가 장난 아니게 길다. 웬만큼 기억력 좋은 사람도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다. "노부모들이 못 찾아오도록 하느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까지 나돌 정도가 됐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06 세계 보건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7세. 남성 73세, 여성 80세로 3년 전 보고서보다 평균 수명이 1.5세나 늘었다. '人間七十古來稀(인간칠십고래희)'는 이제 옛글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우리네 평균 수명은 조만간 傘壽(산수:80세)를 바라보게 됐다. 하지만 고령 사회로의 빠른 진행이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늘도 드리우는 것을….
◇지난해 겨울, 嚴冬雪寒(엄동설한)에 아들집을 찾아온 팔순의 노부모를 얼음짱 같은 방에서 죽게 만든 40대 悖倫(패륜) 아들이 뒤늦게 검거됐다는 뉴스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소기업체 사장이라는 이 아들의 소행이 참으로 가관이다. "밥 얻어먹으러 온 거냐"는 막말부터가 부모를 숫제 거지 취급한다. 헌 짐짝 던지듯 빈 방에 몰아넣고는 "냄새 난다"며 베란다 창문을 열고 보일러 전원까지 꺼 버린 뒤 자기 가족과 일주일간 여행을 떠났다는 거다.
◇가스와 전화까지 차단된 집에서 노부모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쓰러질밖에. 뒤늦게 아파트 경비원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노부는 결국 동상과 패혈증으로 지난봄 사망했다. 오죽 화가 났으면 누나가 고소까지 했으랴. 입원 중이던 노모가 지난달 겨우 의식을 회복한 바람에 이제야 사건 전모가 밝혀졌다.
◇무슨 속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설령 부모가 아무리 문제 많은 부모라 한들 자식이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事必歸正(사필귀정)! 자신이 한 짓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인간사다. 조부모를 학대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자녀가 제 부모에게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지 말란 법은 없다. 안타깝게도 급속하게 늘어나는 평균수명과는 거꾸로 부모자식 간 天倫(천륜)은 어째 갈수록 금이 가는 세태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결코 달라져서는 안 될 것이 있는 법이거늘….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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