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괴물(2006, 봉준호 감독)

갑자기 나타난 티라노사우러스처럼 사나운 생물체로 인하여 한가롭던 한강 둔치는 공격과 파괴의 선혈낭자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사라진 오징어 다리 하나에 심각해지는 선량한 소시민을 덮친 괴물의 게걸스런 잡식성에 소름이 돋는다. 다른 공포 영화와 달리, 이 영화의 공포감은 내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가해지는 공격성에서 기인하고 있다.

괴물의 사나움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흉측한 구강에서 흘러내리는 점액질의 타액이다. 바이러스 공포증을 가진 인류에게 괴생물체의 체액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빈병과 깡통 같은 환경 쓰레기들이 쏟아지는 괴물의 토사물로 보아, 괴물은 인간이 자초한 환경병의 산물임을 시사하고 있다. 점점 괴물의 위력은 미사일보다 무시무시해진다.

파괴행위와 파괴당함의 중심에는 희생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순진무구한 아버지와 딸이 있었다. 사랑하는 딸이 괴물에게 잡혀간 기막힌 사연을 아등바등 호소해 보지만, 부조리한 공권력은 더 비열한 가해자가 된다. 아버지 강두는 바이러스 연구의 마루타가 되고, 딸 현서는 생존도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잊혀갔다. 딸의 운명을 더 이상 국가나 사회에 맡길 수 없었던 아버지가 지닌 유일한 무기는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 정신지체자인 아버지의 눈물겨운 부성은 우리 마음 속에 흩어져 있던 그리운 아버지상을 자극한다.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는 깊은 하수구에 갇혔다. 어머니의 몸속이나 자궁을 상징하는 이 밀폐공간은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퇴행적 욕구와 두려움을 의미한다. 강한 모성과 부권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퇴행적 소망이 피해의식과 두려움의 근원이 되어, 무시무시한 '괴물'이 탄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엄습해오는 이런 불안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영화관에 줄을 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과 마음 정신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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