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낙동강 하구인 부산 을숙도를 찾았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갈대밭의 낭만을 기대하며 찾은 곳에서 분뇨처리장, 쓰레기매립장이 맨먼저 눈에 띄었다. 옆으로 갈대밭 사이에 고여있는 시꺼먼 물, 그 위에서 노니는 철새들… 어처구니 없는 광경이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렇게 방치해 놓은 부산 사람들의 무관심에 분개했던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달초 을숙도를 찾았을 때는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을숙도 주변에는 크고 작은 공사가 한창이었고 초입부는 시민공원으로 바뀌어 콘크리트로 도배돼 있었다. 을숙도 주변은 온통 아파트 숲이었다. 지난 2000년부터 을숙도를 체계적으로 보존하려는 부산시의 노력이 있다지만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 닿을수록 흉해 보이는 느낌은 어쩔수 없었다.
◆최대의 철새 도래지=낙동강 1천300리의 긴 여정은 을숙도에서 끝이 난다. 강이 품고 온 흙과 모래는 바닷물과 만나면서 넓디넓은 갯벌과 모래섬을 만들었다. 1987년 염해 예방을 이유로 하구둑이 축조되기 전만 해도 100만 마리 이상의 새가 머물렀고 이 새들이 한번 날면 하늘이 새카맣게 변했다고 한다.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그 수가 크게 줄었다지만 아직도 매년 200종, 20여만 마리의 새가 찾아온다.
인구 400만의 대도시 한복판에 이런 자연환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주기재 부산대 생물학과 교수는 "대도시안에 엄청난 가치를 가진 낙동강 하구 같은 자연습지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지금까지 이 같은 자연환경을 보전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이 부족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개발 몸살 앓는 을숙도=을숙도는 모순덩어리 땅이었다. 한쪽에서는 각종 보전대책이 실행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개발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을숙도 주변에는 주거단지, 공단 등이 속속 들어섰고 갯벌을 메워 농경지로 변한 곳도 많다. 1966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전체의 23%가 해제돼 개발중이다. 1만ha(3천307만 평)에 이르는 광대한 하구 구석구석까지 신항만과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는 굉음이 울려퍼지고 있다. 환경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 박중록 운영위원장은 "새들이 낙동강 하구 어느 곳에서도 편안한 단잠을 청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환경단체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을숙도 남단부를 관통하는 명지대교건설 공사가 시작됐다. 2008년 대교가 완공되면 새들의 서식처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 또 부산시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남부권 신공항 건설계획의 유력한 후보지도 낙동강 하구지역이다. 엄궁대교, 사상대교, 삼락대교 건설과 눌차만 매립, 녹산공단 갯벌 추가매립 등 끝도 없는 개발계획이 기다리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부산시가 국가가 법으로 보호하고 국민의 세금을 들이고 있는 자연 문화재를 마구 파헤치고 있다."며 개발계획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개발논리에 밀려 소수의 목소리에 그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보전대책은?
전문가나 환경단체들이 내놓는 보전대책도 가지가지다. '자연상태 그대로 놔두자.'는 근본적인 생태주의자부터 '생태관광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자.'는 극단적 개발론자까지 다양하다. 이런 갈등속에서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구심점이 없는데다 뚜렷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부산시가 낙동강하구 보전과 합리적 이용의 구심점 역할을 위해 추진중인 에코센터 건립도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규모가 줄어들었고 추진계획도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박중록 운영위원장은 "낙동강 하구는 이곳을 방문한 전 세계 전문가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라면서 "이곳을 파괴하려는 각종 개발계획을 모두 철회하고 생태공원으로 조성해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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