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들에게 음식을 줄 때는 나를 성자라 불렀다. '빈자들이 왜 배고프냐?'고 묻자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1960년대 후반 남미에서 태동한 '해방신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브라질의 돔 엘더 카마라 대주교가 1999년 8월 27일 사망했다. 카마라 대주교는 훗날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와 같은 해방신학자들만큼 이론을 갖춘 것은 아니었지만,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 헌신하며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브라질 동북부의 거대 빈민지역인 레시페-올린다 대교구에서 빈자들과 함께 살며 군부독재에 맞선 그는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질 것을 끊임없이 촉구했다. 그러는 동안 정부의 폭압은 물론 암살위협도 받았다.
군사독재 시절(1964~1985)에 그는 '빨갱이 주교'로 불렸다. 교회 안에서도 그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부른 배로는 기도할 수 없다."며 가난한 이들을 버리지 않았기에 '가난한 이들의 형제'라고 불렸다.
그러나, 1985년 그가 대주교 자리에서 물러나자 브라질 가톨릭계는 보수성향으로 되돌아갔다. 그의 명성만 사그라지지 않았다.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 분출, 3만 6천 명 이상 사망 ▲1998년 러시아, 외환거래 중단.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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