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기의 초등학교 입학은 설레면서도 서글프기도 한, 아무튼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시기이다. 나 또한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유년시절의 기억이 추억으로 접어드는 걸 아쉬워하는데 벌써 2세가 초등학생이 된다는 걸 실감하며 세월을 붙잡고 싶은 서글픔을 느꼈는데 그런 감상에 젖기엔 학부모 되기가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았다.
우선 산수가 수학으로 바뀐 것과 바른 생활, 즐거운 생활 등의 용어이다. 국어, 산수,사회, 자연에 익숙한 70년대 생이 그걸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알림장이란 걸 가지고 와서 나눠준 시간표대로 매일아침 전쟁을 치르게 되는 그 첫날. 나를 적응하지 못하게 한 몇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딸아이 단비의 알림장에는 바생, 즐생, 슬생, 수익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단비야 이게 뭐니?" "엄마는 이것도 몰라? 바생은 바른생활이야. 생길이라고 적혀있지! 이거랑 이건 짝지야."
'생길?' 의아해 하는 내 눈빛 아래에는 '생활의 길잡이'라는 또 다른 부록책이 있었다. 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또 한번 물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적어 주셨어? 바생이라고." "응"
바생이라···.
모르는 누군가가 보면 나보고 예민한 엄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많은 글을 배우고 자라야 할 초등학교 1학년생이 벌써부터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단어들을 필요에 의해서 줄여쓰는 것이 잘못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방송 프로그램의 이름을 줄여서 불렀던 것들이 '토토즐', '별밤'이었던것 같다. 지금은 모든 TV 프로그램들이 줄여서 애칭처럼 쓰고 있는 것이 관례처럼 이어지고 진행자들도 줄여 지칭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그뿐인가. 방송사들의 이름 역시 약자로 만든 이름이고, 모든 국제 기구들의 이름 또한 이니셜을 따서 만들었지 않은가! 줄이는 것이 미덕이 되어 버린 사회이다.
어떡하면 멋있게 의미있게 부르기 쉽게 줄이는 것이 광고의 컨셉이 되어 버린 마당에 이런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하는 것은 구석기시대의 이야기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한창 이런 것들을 배워야 하는 나이가 아니다.
즐거운이란 단어도, 바르다는 단어도 아직 정확하게 이해못하는 아이들에게 바른생활이 '바생'이 되고 즐거운 생활이 '즐생'이 되는 것이 당연한 듯 기록하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이해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일까?
오늘은 아이가 짱구란 만화프로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만화가 교육용으로 적합지 않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 짱구의 마지막 완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아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어디에 그런 말이 있냐고 묻길래 난 컴퓨터를 켜서 검색을 하던중 잔인한 짱구라는 단어를 보았다.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잔인한 이란 뜻이 뭐야?"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잔인한 이란 단어를 알리없다는 생각이 그 때서야 들었다.
"음, 그게 말이야···."
한 십분을 설명했을 때쯤에야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리지만 정확하게 이해했을까 의문스럽다.
어느날 학부모 모임에서 한 학부모의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들었다. 작년 1학년 학급의 한 학생이 수업에 적응을 못하고 뛰어다니며 산만하게 행동을 하였는데 그 선생님이 그 반 아이들에게 그 학생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 **는 자유가 필요한 아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에게 자유를 주도록 하자." 그러고 한 학기동안을 그 학생이 학급에 적응하기 위하여 맘껏 다닐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빠르고 편리한 것.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 이긴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아이를 의자위에 빨리 앉힐 수 있는 것인지 그 선생님이 몰랐을까? 난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네 초등학생의 교육은 빠른 것 보다는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가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편리한 것보다는 불편하지만 낭비하지 않는 걸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도 배우고 한문도 배워야 하는 아이들에게 하늘천 한자보다, A라는 영어보다 바생의 빠져있는 '른'과 '활'을 넣어서 더디더라도 힘들더라도 똑바른 글자가 적혀진 알림장을 들고 오는 학교가 되었음 한다.
이소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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