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게 되면 기업들은 채산성을 맞추기가 어려워지고 경영난에 빠지기 십상이지만 오히려 더욱 번창하는 곳도 있다.
주요 원자재인 플라스틱을 재생하는 디지·켐(주)도 그런 기업이다. 지난 한해 동안 매출액이 70%나 늘어났으며 올해도 고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때문에 이 회사의 윤길중(尹吉重·45) 대표이사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 재생산업이 열악했던 상황에서 창업, 13년만에 폴리카보네이트(PC) 분야에 관한한 세계 최고 기업을 꿈꿀 정도로 회사를 성장시킨 것이다. PC는 핸드폰·노트북·자동차 부품·사무기기 등에 사용되는 고가의 플라스틱 원료로 이 회사가 창립될 때만 해도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했었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것은 경북대를 졸업한 직후인 1986년 봄, LG 화학에 입사해 합성수지 부문 근무를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와 소신 때문이었다.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이 사용 후 버려지는 것을 보면서 재생산업이 환경과 경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 각광받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그래서 1993년 봄 회사를 그만둔 뒤 퇴직금 1천만 원으로 직원 3명을 데리고 창업했다. 당시만 해도 재생 기업을 고물상 정도로 간주해 어려움이 적지 않았으나 기술 개발을 거듭, 국내 대기업에 독점적으로 납품하게 되면서 급성장하게 됐다. 창업 초기 1억 원 정도였던 연 매출액이 작년에는 70억 원으로 늘어났으며 직원 수도 30여 명이나 된다.
사실 창업하게 된 데에는 가난에 찌들린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는 장남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었다고 한다.
전남 구례 농촌마을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중학교 2학년 때 가난에서 벗어나 보겠다며 가족들 모두 대구로 이사왔던 것이다. 아버지는 공장에 다녔고,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협성중학교로 전학와 문예반 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작가가 되겠다는 '다른 꿈'을 갖게 되면서 부모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우등생인 아들이 상업고로 진학, 당시 선망받던 직장이었던 은행에 취직하기를 바랐던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몰래 인문고 원서를 내 영신고에 입학해 버렸을 정도였다.
고교에서도 문예반 활동을 계속했으나 서울에 있는 대학의 관련 학과 입학시험에서 불합격했던 게 다시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집을 뛰쳐나와 방황하기도 했으나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껴 부모 뜻에 따르기로 마음을 바꾼 뒤 경북대 경영학과에 진학했으며 창업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봉대기자jinyo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