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는 황소 125마리 무게인 125t, 높이는 아파트 4층에 가까운 11m의 화강석 石像(석상).
이집트 수도 카이로 도심에서 52년간 매연 공해에 찌들며 서 있던 고대 파라오 람세스 2세 석상의 규모다.
3천200년 전에 만들어진 그 람세스 석상이 사흘 전인 25일 피라미드가 있는 사막 기슭으로 옮겨졌다.
애당초 이 석상이 세워져 있던 곳은 고대 도읍지 멤피스.
자연 친화적 환경 속에 탈 없이 서 있던 멀쩡한 석상을 굳이 자동차 매연과 소음 오염 물질 공해로 가득 찬 카이로 도심 속으로 끌어 옮긴 사람은 바로 나세르 대통령. 그는 유난히 민족주의와 애국을 강조했던 정치꾼이었다.
이집트 영광의 상징물을 수도 복판에 옮겨 놓음으로써 외세 침략의 상처를 씻고 이집트의 영광된 역사를 되찾자는 명분과 민족의 자긍심을 부추겨 애국적 지도자란 이미지를 얻어 내려는 정치적 야심에서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민족주의적 애국심은 거꾸로 이집트 영광의 상징인 람세스 석상을 매연에 그을린 흉상으로 일그러지게 함으로써 나라의 자긍심과 상징성을 되망쳤다.
그러한 나세르의 실패한 민족주의적 애국심의 허상이 최근 韓日(한일) 지도자들의 정치 행보에서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신사참배에 집요하게 몰입하는 고이즈미의 경우 참배가 곧 애국이요, 자주적 민족 자긍심이란 망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는 '일본은 애국자들이 나라를 망쳤다'는 역설적인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된다.
국수주의적 오기를 애국심으로 포장 선동하여 수천만 국민을 애국의 이름 아래 이길 수 없는 전쟁터로 몰아넣은 전범들도 고이즈미의 눈에는 분명 애국자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애국자(전범)들은 일본이라는 조국을 망쳤다.
현수막 속의 애국, 內功(내공)의 힘은 없이 오기나 입심만으로 덤비는 설익은 애국은 나라를 망친다는 본보기가 된 것이다.
고이즈미의 내공은 아직 중국과 러시아라는 武林(무림)의 高手(고수)들을 한 발에 밟고 일어설 만한 경지에 와 있지 않다.
신사참배라는 이벤트로 자신의 애국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국민의 카타르시스를 씻어 주는 반짝 인기를 얻어낼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애국이 아니라 고수에게 코피나 터지고 끝나는 망국의 오기일 뿐이다.
나세르처럼 정치꾼이란 조상의 문화유산까지도 정치적 선동 도구로 이용하는 법이다. 반세기 전에 죽은 전범들의 혼령마저 정치적으로 역이용하는 고이즈미의 애국도 선동이다.
우리의 '작통권' 논란 역시 혹 '설익은 애국자들 바람에 대한민국이 망쳐지지나 않을까'라는 반론들이 적지 않다. 미국에 큰소리치면 힘센 나라에도 기죽지 않는 '용감한 지도자'로 비치게 되고 일본을 꿀밤 먹이고 꾸짖으면 더욱 '멋진 대장'으로 보이게 된다.
대중의 심리나 정서는 그런 것이다. 정치인은 그것을 노린다. 우리 쪽은 어떤가. 내공은 부실한데 입심과 객기만 센 애국자들이 국민을 바람 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주, 반일 다 좋다. 필요한 만큼은 반드시 확보하고 지켜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공 약한 설익은 애국, 정치적 인기 만회를 위한 나세르식 이벤트 애국만으로는 脫美(탈미)도 克日(극일)도 自主(자주)도 못한다.
자신감 넘친 지도자를 보는 건 신명나는 일이다. 다만 그게 입심 아닌 내공에서 나온 자신감이란 확신이 설 때만 그러하다. 그런데 국방 연구원의 연구보고를 보면 아직은 내공보다 입심이 더 세 보인다. 그래서 애국자들의 언동이 세면 셀수록 더 불안스러워진다. 말에서 떨어지고 나서 '막 내리려고 하던 참이야'고 하는 건 진정한 자존심이 아니다. 입은 다물고 경제'국방'교육'계층 화합의 내공부터 쌓아라.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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