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콘크리트 벽에 갇혀 지내는 도시 아이들에게 시골은 황토빛이요, 풀빛이다. 학교와 학원을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측은함과 미안함까지 들 지경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주말농장, 농촌체험, 자연학교 등이 인기를 얻고 있는지 모른다. 한 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아이들 손을 잡고 아무렇게나 풀이 자라난 촌길을 걸어볼 수 있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미처 여유가 없다면 책으로 시골을 먼저 만나보면 어떨까. '여우골에 이사왔어요'(양혜원 지음/창비 펴냄)는 이런 시골 생활을 손에 잡힐 듯이 그리고 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귀농해 살고 있는 지은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귀농 가족이 산골 마을에 적응해 살아가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초등학교 4학년 채운이와 2학년 남동생 찬이 남매가 화자가 돼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산골 살이의 진솔한 모습을 아이의 시선으로 때로는 익살스럽게 보여준다. 산골에는 장미빛 낭만만 넘치는 것이 아니다. 갈등도 있고 화해도 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난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슬며시 웃음이 터진다.
'똥탑'을 아시는지. 찬이는 겨우내 재래식 화장실과 남 모르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겨우내 똥이 탑처럼 차곡차곡 쌓이면서 꽁꽁 얼더니 급기야 뾰족한 끝이 엉덩이를 찌를 태세이기 때문이다. 찬이는 결국 아버지를 졸라 휴대용 부탄가스로 똥탑 녹이기 작전에 돌입한다. 이 철 없는 부자는 똥탑을 녹이는 재미에 푹 빠져 똥냄새가 온 동네로 퍼지는 것도 알지 못한다. 수세식 화장실, 비데에 익숙한 도시 아이들은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책은 모두 6가지 이야기를 통해 개학을 맞은 산골 분교의 정경, 사람과 짐승이 공존하는 풍경 등을 담아냈다. 특히 도시에서 온 신출내기인 찬이네와 여우골 터줏대감인 호미할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장면은 귀농 가족이 맞닥뜨려야 할 장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귀농 이야기는 자칫 감상적으로 흐르기 쉽지만 지은이는 초등학생의 시선을 빌려 산뜻하게 풀어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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