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 오늘은 부끄러운 날

오늘은 일제(日帝)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부끄러운 날이로구나. 지금으로부터 96년 전인 1910년 8월 29일 우리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36년 간이나 억압을 받게 되는 부끄러운 역사가 시작되었단다. 그래서 이 날을 나라가 수치를 당한 날이라 하여 국치일(國恥日)이라고도 한단다.

이맘때가 되면 문득 귀암 노인 이야기가 떠오르는 구나. 아니, 귀암 장군이라고 해야겠지. 전라도 군산 지방에 아무도 그 이름을 모르는 한 선비가 있었단다. 그는 귀암이라는 마을에서 숨을 거두었기로 귀암노인이라고 불린단다.

그는 원래 대한제국 근위부대 소속 병사였는데 일제에 의해서 강제 해산되자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지. 그는 일제가 부대를 해산하면서 은사금 명목으로 나누어 준 돈을 찢어 내던지고 동지를 모아 일본군을 공격하는 일에 앞장섰지.

남대문 근처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을 공격한 이래 전라도로 쫓겨올 때까지 3~4년 간 계속 공격을 그치지 않았지. 그러나 일본군에 비해 숫자가 모자라 쫓기는 경우가 많았지. 마지막으로 전라북도 줄포 싸움에서 절름발이가 되고 만 그는 어쩔 수 없이 귀암이라는 마을에 들어가 숨어살게 되었단다.

마침 그 마을에는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와 합숙을 하며 전라도 지방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고 있었대. 일제에 쫓기던 그는 이 선교사 숙소로 들어가 문지기로 써줄 것을 청하였지. 그리하여 이 절름발이 병사는 그 날부터 선교원에서 일하게 되었지.

그는 부대가 해산될 때 가지고 나온 장도(長刀)를 보배처럼 여기며 항상 차고 다녔대. 밤이 되면 그 긴 칼을 어깨에 둘러메고 절뚝거리며 선교원을 순찰하곤 하였다는 구나.

그는 문지기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군에 있을 때 익힌 생활 습성을 조금도 고치려 하지 않았대. 새벽에 일어나 찬물을 온몸에 끼얹는 수련(水鍊)도 계속하고, 비록 다리를 절뚝거리기는 하였지만 스스로의 구령에 맞추어 행진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지. 그리고 선교사들이 아무리 교회에 나오라고 해도 마다하고 아침마다 궁궐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 올리곤 하였대.

어느 날 그는 급히 돈이 필요하여 선교사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단다. 선교사들은 이 무사(武士)의 고집을 꺾어주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장도를 맡기면 돈을 융통해주겠다고 하였지.

대엿새 고민하던 이 무사는 20여 년 간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았던 칼을 맡기고 돈을 빌었지. 그런 지 며칠 뒤 이 무사는 귀암 강변에서 자결한 채로 발견되었단다. 자신의 장도를 훔쳐 나와 자신의 배를 찌른 것이었지.

그 옆에는 유서 한 통이 남아있었어.

"무사로서 남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또한 남의 나라 사람 밑에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것만도 씻을 수 없는 치욕인데, 이제 나라로부터 받은 칼마저 떼어놓게 되었으니 잠시도 살아갈 면목이 없어졌다."

이 유서는 많은 사람들을 울렸지. 선교사들도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였고…….

얘야, 오늘따라 이 이름 없는 무사의 기개가 더욱 크게 밀려오는구나.

심후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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