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0만 명이나 되는 지역에 변변한 공공 도서관 하나 없어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24일 오후 달서구 이곡동의 한 사무실. 주부 신수진(37) 씨는 또래의 엄마들과 도서관 건립 문제를 놓고 한창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 동안 시민·사회단체에서 공공 도서관 건립 추진 운동을 벌인 적은 있지만 이처럼 엄마들이 나선 것은 처음이다. 왜 엄마들이 나서야 했을까.
"엄마들이 도서관의 필요성을 가장 잘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이 도서관을 이용하도록 하고 싶은데 없어서 너무 불편하니까요."
신 씨는 이날 모인 '좋은도서관 만들기 성서지역 엄마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4월 이 모임을 결성하기 전까지만 해도 10살 짜리 딸과 4살 짜리 아들을 둔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성서지역 도서관 건립을 위해 30여 명의 엄마들과 함께 머리띠를 불끈 맸다.
"지난 3월에 상인동 어린이 도서관, 도원 도서관 등 월배 지역에 2개 도서관이 개관했어요. 한 민간 도서관도 비슷한 시기에 그 지역으로 이전했고요. 하지만 성서 지역 아이들만 여전히 도서관에 목말라 있습니다. 그나마 두류도서관은 거리가 너무 멀어 이용할 엄두도 내지 못해요."
이런 사정 때문에 성서 지역에서 유일하다시피한 용산동 학생문화센터 내 작은 도서관은 주말 이용객이 1천 명을 넘을 정도로 터져나간다고 말했다. 동사무소에 소규모 도서실이 있긴 하지만 장서의 질과 양에서 아이들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했다.
도서관이 없어서 생기는 불편은 엄마들이 가장 먼저 안다. 신 씨는 "어릴 때부터 도서관,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셈"이라며 "성서 지역에는 어린 자녀를 둔 30~40대 맞벌이 부부들이 많은데 아이에게 매번 새 책을 사주는 비용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엄마들은 용감했다. 공문서 한 장 만들어 본 경험조차 없었지만 행동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주민서명운동을 벌였다. 5월 지방선거 때는 입후보자들에게 도서관 건립과 관련한 공개 질의서를 띄웠다. 달서구 지역 내 도서관과 동네마다 흩어져 있는 소규모 도서실, 계명대 도서관까지 찾아가 견학했다. 29일에는 학생문화센터에서 지역 관계자들을 초청, 주민 토론회를 열고 도서관 건립 추진위도 구성할 작정이다.
"성서 지역의 상주 인구를 감안한다면 제대로 된 구립 도서관이 들어서야 합니다."
신 씨는 단순히 책만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성서 지역 주민들의 문화·학습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추진위가 구성되는 대로 도서관 부지 선정, 규모, 예산 확보 방안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인천 연수구에는 부지 선정부터 건립까지 주민들 손을 거친 도서관이 있대요. 우리도 하지 못하란 법이 있나요? 최소한 1년 후에는 구청에서 밑그림이 나오도록 해야죠."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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