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국어 수업 시간을 통해 창의성을 기른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창의성이라고 하는 '그 무엇인가'가 워낙 복합적이지 않은가. 지능인지, 기능인지, 태도인지 오리무중 실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라 더욱 매력적 능력인 창의성을 지리산의 수많은 산자락에 비유해 보면 어떨까? 그 산자락들을 일일이 돌아보지 않고 노고단에 올라갔다 오더라도 우리는 지리산을 보고 왔노라고 말하는 것처럼 수업을 통해 창의성의 어느 한 자락이라도 잡아보게 하면 어떨까? 그렇게 하고 싶어 지난 3월말 경대사대부중 3학년 교실(담당 교사 안기주)에서는 '창작시' 쓰기 수업(3학년 1학기 '국어' 1과 시의 표현 단원)이 이루어졌는데 창의성 수업의 '적절한 보기'가 될 수 있을 듯하여 소개한다.
먼저 그 날 학생이 수업 과정을 통해 완결한 시 작품 한 편을 소개한다.
유채꽃이 가로막은 바다
박현진(경대사대부중 3학년)
하늘 너머까지 펼쳐진 생명의 대지를
금방이라도 한 발 내닫아 뛰고픈데
조그만 수다쟁이 유채꽃 소곤거림이
자꾸자꾸 말 걸어와 나는 그만 뛸 수가 없다.
말 걸지 마라. 나는 저 너머까지 달리고프다.
그래도 샛노란 병아리떼처럼
유채꽃은 제 할 말 다 한다.
중학생이 45분간의 국어 수업 시간 안에 쓴 시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한 시다. 놀랍다. 이러한 시를 만들어내기 위해 거쳐 간 과정들이 다소 복잡하기는 하다. 그러나 자동차도 운전을 처음 배울 때는 엄청나게 복잡해 보이지만 매일 매일 운전하다 보면 단순해지는 것처럼 시 쓰기도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도전 의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너무 만만히 보아서도 안 되지만 접근 불가 지역처럼 여겨서도 안 된다. 창의적 인물들의 특징인 도전 의식, 아자! 한 번 따라해 보자. 창작시를 쓰기 위해 학생들이 거쳐 간 과정은 모두 여섯 가지이다. 이제 여러분도 천천히 이 과정을 따라 시를 써보자. 여러분의 가슴 속에 잠들어 있는 언어의 씨앗을 틔워보자.
①사진을 보며 어울리는 소재 나열하기(브레인라이팅)
시를 쓰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단계. 어떤 사진을 보면서 그 사진과 관련된 생각들을 떠올린다. 사진 안에 있는 소재뿐만 아니라 사진 밖의 소재들도 상상하면서(상상력) 다양한 생각들(융통성)을 떠 올린다. 떠올린 생각은 많을수록 좋다(유창성). 최소 60~100개 정도의 생각들을 학습지에 나열한다.
②소재들을 의인화하기(시네틱스 : 유추)
①에서 나열한 생각 중에서 자신이 시로 쓰고 싶은 소재를 골라내어 내가 그 소재가 되어 보는 단계(독창성), 다음과 같은 물음을 계속 던져서(유창성, 융통성) 다양한 각도에서 풍부하게 상상해 본다(상상력).
-사진 속 ○○와 ○○는 어떤 관계일까?
-사진 속 ○○라면 ○○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사진 속 ○○는 어떤 처지에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사진 속 ○○라면 무엇을 소망할까?
-사진 속 ○○라면 무엇이 속상할까?
그런 다음 유추한 생각을 붙임종이에 써서 사진의 해당부분에 하나씩 붙여 나간다.(사진-국어3)
③다양한 표현법과 심상을 활용하여 표현하기(마인드맵)
이제 떠오른 생각에 멋진 포장을 해 보는 단계. 선택한 사진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다양한 표현법(비유하기, 강조하기, 변화주기)을 활용하여 표현해 본다. 마음속에서 어떤 표현법으로 할 것인지(독창성, 정교성) 계속 자기 자신에게 물어 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선택한 사진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다양한 심상(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이 느껴지도록 표현해 본다. (사진-국어4)
④개요 짜기(생각 짜임표)
본격적으로 시를 쓰는 바로 앞 단계. 앞에서 정리한 내용을 기초로 생각과 느낌이 잘 드러나도록 시를 쓰기 위한 전체 계획을 세운다. 각 연에 담을 중심 생각을 써 보고, 제목을 붙인다.
⑤시 쓰기 및 고쳐쓰기(정교성, 독창성)
⑥시화 그리기
사진을 보고 시를 썼지만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상상하여 시의 배경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사진과 그 느낌을 비교해 본다. (사진-국어5)
이렇게 시를 쓰는 것은 시인들이 시를 창작해 내는 과정과는 다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등산가들처럼 등산하지 않는다고 해서 산에 올라가는 즐거움을 모른다 할 수 있겠는가. 수업을 마치고 창작의 기쁨을 나누는 시간에 모두가 동참하여 잠시 수다를 떨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이고, 자기 스스로 자기 작품을 평가하는 시간도 마련해 보고, 교사의 날카로운 비판도 한두 줄 정도 얹어 작품집에 넣어 주면 금상첨화. '창의'의 펄럭이는 치마 한 자락 잡아 본 젊고 싱싱한 시인들이 동네마다 학교마다 넘쳐 살맛나는 삶의 자리를 만들어 가리라 기대하며 좋은 수업을 보여준 사대부중 3학년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최진아(사대부고 교사)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