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를 한 경주에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본사가 이전하기로 했지만 경주 내 어느 지역으로 이전할 것인가를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경주 감포읍, 양북·양남면 등 주민들은 방폐장이 들어서는 곳으로 본사 이전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경주시내 쪽에서는 경주시의 중장기적인 발전과 이전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시내권 이전을 원하고 있다. 또 한수원 노조는 노조와 합의없는 일방적인 결정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같은 문제로 당초 예정한 8월말 이전에 이전 터 확정은 불가능해졌고 경주시와 한수원은 9월 초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9∼10월까지 이전 대상지역을 선정키로 합의했지만 앞날이 밝은 편이 아니다.
◇갈등의 원인은?=정부는 지난 19년간 표류해 왔던 방폐장사업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부지 선정시 주민투표와 각종 지원책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3월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방폐장특별법)을 제정해 방폐장 유치지역에는 특별지원금 3천억 원, 반입 수수료 연간 85억여 원, 한수원 본사 이전, 범정부 유치지역지원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 구성과 지원 등을 법적으로 보장했다. 이에 따라 직원 수 약 900여명의 한수원 본사도 2010년 말까지 경주로 이전하게 됐다.
한수원 본사의 양북 이전 문제가 공식 거론된 것은 지난해 11월 2일 방폐장 부지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에 앞서 지자체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백상승 시장을 비롯한 국책사업경주유치추진단이 반대가 심했던 이 지역 주민들의 찬성률을 높이기 위해 공약을 한데서 비롯됐다. 이들 3개 읍·면의 방폐장 유치 찬성률이 경주시 전체 평균치 정도 나올 경우 한수원 본사를 양북으로 이전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주민투표 결과, 3개 지역의 평균 찬성율은 58.2%로 전체 평균치 89.5%에 크게 모자라지만 방폐장 유치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수원 본사는 당연히 방폐장 옆으로=3개 지역민들은 방폐장 유치 당시 한수원 본사 양북 이전 공약을 당연히 이행 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전국의 53%나 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30여년간 안고 살아오면서 각종 규제와 제한으로 불이익을 당해 왔는데 방폐장 유치의 인센티브인 한수원 본사를 이전시켜 좀 더 잘살도록 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방폐장 유치 확정에 따른 지역대책위원회(동경주대책위)를 구성했다. 동경주대책위 배칠용 집행위원장은 "3개 지역 주민들은 방폐장 유치 운동 당시 양북으로 한수원 본사 이전을 약속했고, 방폐장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한수원 직원들과 가족들이 방폐장 반경 5km 이내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승환 공동대표(경주시의원)은 "방폐장 유치운동 당시 약속 이행과 안전성 담보를 위해 한수원 본사를 양북으로 이전해야 한다."며 "만약 이같은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신월성원전 1,2호기는 물론 방폐장 건설을 저지하겠다는 것이 지역민들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수락 공동대표는 "한수원 본사가 양북 이전 시 승용차로 경주는 25분 정도, 울산은 40분 정도 걸려 경제권이 울산으로 유출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전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경주시내로=시내 상가주민들을 중심으로 한수원 본사 이전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 경주지역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경주시내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시내권 유치 운동이 조직화 되어 있거나 실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성동시장의 한 상인은 "그동안 월성원전 인근에서 각종 제한과 불이익을 보며 살아온 3개지역민들의 한수원 본사 유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나 경주로 이전할 한수원 직원 및 그 가족들의 보다 많은 이사와 이전 효과의 극대화, 시의 중장기 발전적 측면에서 양북 보다는 시내권역에 이전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경주지역경제살리기범시민연대 한 관계자는 "양북으로 한수원 본사 이전시 경제권이 울산으로 유출 또는 이탈될 가능성도 높다."며 "지역의 중장기 발전 측면을 고려하면 동경주 지역에는 상당한 인센티브를 주더라도 한수원은 시내권에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동경주 지역과의 대결구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면서도 시내권의 목소리도 내어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앞으로 조직화 등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경주시의 입장=현재까지 경주시는 백상승 시장이 방폐장 유치전과 5·31 지방선거에서 언급했던 "본사이전 결정권이 한수원에 있으나 방폐장 건설지역에 본사 이전을 권유하고, 이 일대를 에너지클러스터로 조성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시는 지방선거와 양성자가속기 등 국책사업 유치 업무로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졌다. 그러나 한수원 측의 불만과 동경주 지역주민들의 반발 등이 계속되자 시는 최근 한수원에 양북면 장항리 일대를 한수원 본사 이전지로 추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약속했던 양북으로의 이전 약속을 지키고, 오는 2009년도 완공예정인 경주~감포 4차로 확장공사가 끝나면 시내와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명분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을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한수원 측에서는 시가 추천한 장항리 일대가 한수원 본사 이전을 위해서는 평지 기준으로 5만여 평, 구릉지 기준으로 10만여 평 정도가 필요한데 구릉지를 포함해서도 5만, 6만여평에 지나지 않아 반대 입장이다. 특히 한수원 본사 이전시 함께 이전 할 것을 알려진 두산중공업이 5만~10만여평을 구입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어 이전지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동경주대책위 배칠용 집행위원장도 "시가 추천한 양북면 장항리 일대는 방폐장 주변 5km 보다 먼 10km 정도 떨어져 있고 경주 생활권으로 동경주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수원의 입장=한수원은 "백 시장이 방폐장 유치시와 지방선거에서 양북 이전을 공약하는 바람에 터 선정 작업이 꼬이고 시간도 많이 낭비됐다."고 불만이다. 한수원은 건교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에 따른 기본 원칙 즉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교육 및 문화, 의료 등 정주 환경 조성 등 제반 여건들을 충족시켜 주는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추령재를 넘어 양북으로 이전하는 것을 완곡하게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한수원 노조 본사지부는 지난달 성명서를 통해 "한수원 직원과 노조의 의견을 완전 배제한 채 본사를 일방적으로 경주로 이전하려는 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가족들의 행복추구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으로 민주적인 절차에 위배돼 재고돼야한다."고 주장했다.
본사이전추진실 신흥식 부장은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른 쾌적한 환경과 근무여건 조성을 위한 교육 및 생활편의와 복지증진 등 이전할 직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고 문화재 출토 가능성이 적으면서 차후 확장성을 고려한 지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그 동안 지지부진했던 한수원 이전부지 선정을 위한 논의는 9월 초 민관공동협의체가 구성되면 본격화 될 전망이지만 협의체 구성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어떤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동경주대책위는 "한수원 본사는 방폐장 주변으로 와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협의체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참여해도 들러리에 불과하다."며 협의체 참여를 거부하면서 의사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인원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한수원 본사 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동경주지역 주민들은 30일 월성원전 앞에서 6천여명이 참가하는 한수원 본사 유치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이후 한 달간 릴레이 시위를 갖기로 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킬 예정이다.
여기에다 월성원전이 사용후핵연료 저장고 증설을 추진하면서 최근 반대여론이 높아지면서 한수원 본사 이전부지 선정에 악재로 등장했다. 한수원 노조의 요구조건을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인지 등은 민관협의체에서 선정방법에 대한 논의를 통해 결정하겠지만 선정이 안된 지역의 반발 등 그 후유증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도 주요 과제다.
경주·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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