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들어 '고용없는 성장'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수출이 잘 되고 성장률도 5%내외가 되지만 고용이 크게 늘지 않는 추세이다. 고용이 잘 늘지 않는 원인으로는 무엇보다도 전자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한 제조업의 자동화, 저임금국가로의 사업이전 등의 기업환경의 변화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시중에서는 성장이나 고용 증대를 위해서 금리를 내리거나 동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제안들이 가끔 등장하곤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8월초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통화가 장기적으로 물가상승압력으로 대두될 것을 감안하여 콜금리를 4.5%로 인상하였다.
그러면 물가와 고용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일부 기업이나 학자들의 주장대로 금리를 낮추고 통화를 늘려야 생산과 고용이 증대되는 것일까?
이러한 견해를 처음으로 밝힌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필립스로 그는 1958년 영국의 통계를 이용하여 역사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았을 때 실업률이 낮았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그 후 비슷한 결과가 미국에서도 보고되었다. 이러한 물가와 실업의 상반관계 또는 대체관계가 영구적인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고 이름도 '필립스곡선'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의 발견은 1960, 70년대에 정책결정자들이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금리를 낮추고 물가상승을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한다는 이론적 근거로 자주 이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상반관계가 시간이 흐르면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만이나 펠프스 교수 등이 60년대 중반에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물가상승 기대심리가 생기면 물가와 실업의 대체관계가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끝난다는 반론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예를 들기를, 기업과 노동자들이 매년 연초에 일정수준의 임금계약을 책정하는데 제품이 예상보다 잘 팔려 가격이 오르면 기업은 고용을 늘려 생산을 증대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노동자들을 종전의 임금수준으로 고용할 수 있을 때만 그렇다는 것이다. 물가가 계속해서 오랜 기간 오르면 사람들에게 물가상승 기대심리를 형성하고 이것은 노동자로 하여금 임금인상을 요구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이윤이 줄어들고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하려는 유인을 잃게 된다. 그래서 단기간동안만 물가상승이 실업을 낮출 수 있게 된다. 금리를 낮추어 통화를 늘려 고용을 늘리려는 시도는 장기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은 물가만 올리는 결과만 낳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70년대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주요국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경제개발초기에는 통화 공급확대가 고용을 증대시키고 성장률을 높였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유휴노동력이 줄어들수록 통화팽창정책은 오히려 임금과 물가의 상승만을 초래하고 고용은 크게 늘리지 못하였다. 또한 높은 물가상승은 물가위험을 높여 금리를 상승시키고 경제에 불확실성을 조장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저축의지를 감소시키는 한편 투기를 조장하는 등 시장의 기능을 왜곡시켜 투자의욕을 감소시키고 성장잠재력만을 잠식한 사례를 많이 보아 왔다. 90년대의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과 경험을 토대로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물가안정이 고용증대에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사람들의 물가기대심리를 낮추어 경제를 안정시키고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오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물가안정이 강한 성장과 고용안정을 가져온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것 같다.
경제가 개방되어 세계화가 진척될수록 자국의 경기만을 고려한 경제정책은 성장이나 고용에 나타나는 효과는 줄고 오히려 악성 인플레이션에 휩싸이게 될 위험이 높다. 고용과 물가는 이제 서로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가 되었다고 하겠다.
안세일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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