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가 주목한 '조선족 감독' 장 률

중국 조선족 동포 영화감독 장 률(44). 국내에서 그의 영화를 본 관객은 수천명에 불과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유명한 감독이다. 칸 영화제, 시애틀 국제영화제, 바르셀로나 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잇따라 러브콜을 받아왔다.

26일 UNICA 세계영화제 개막 축하를 위해 대구를 찾은 장 감독은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다. 몽골에서 한·몽·프 합작으로 두 달간 영화를 촬영하고 난 직후 대구까지 달려온 탓이다. "제 영화요? 재미없어요. 마음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나타난 거죠."

시종일관 삐딱한 화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장 감독은 '아시아의 떠오르는 시네아스트(cineaste)'로 칭송받고 있지만, 사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불과 6년 전. 그것도 단편 하나, 장편 두 편이 영화 이력의 전부다

그가 영화감독이 된 것은 술기운에 뱉은 한 마디 때문이란다. 원래 연변대학교 교수였던 그는 천안문사태로 해직되고 소설가로 전업했다. 한 영화감독 친구가 그에게 시나리오를 부탁했지만 제대로 영화화하지 않았다.

화가 난 장 감독은 "내가 직접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내뱉었고, 이를 곧 실행에 옮겼다. 이렇게 영화를 찍기 시작했지만 그 흔한 영화교과서는 물론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는 예술영화 한편 본 적 없다.

그런데 그의 영화는 어떻게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된 걸까. "한마디로 황당해요. 인생이 황당하다는 사실은 반증하는 거죠. 엉뚱한 사람이 와서 다른 얘기를 하니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거 아닐까요?"

시종 '아무 생각 없다'고 손사레를 치지만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삶에 대한 통찰이 묻어난다. 지난 영화 '망종'이 조선족 여인의 삶을 그려냈다면, 이번에 몽골에서 찍은 영화 '타츠칸'은 망명객의 고단함을 전한다.

몽골어로 사막과 초원의 중간지대를 의미하는 제목처럼, 경계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타츠칸'은 점차 사막화되어 마을사람은 물론 가족까지 모두 떠난 마을에서 홀로 나무를 심고 있는 한 몽골인 남자에 관한 이야기. 후반작업은 한국과 프랑스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조선족 감독 1호인 그는 그만큼 어깨가 무겁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내일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계획을 세우겠어요? 그저 찍고 싶은대로 찍는거지."

힘을 뺀 그의 대답처럼 그의 영화 화두인 '경계'에 대해서도 역시 담백한 답이 돌아왔다. "모든 사람은 시시각각 경계에 서 있어요. 그 경계선에 서서 바라보는 삶과 그 긴장감, 그게 영화 아니겠어요?"

최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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