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한국과 맺은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인구 100만여 명의 멕시코 레이노사 LG전자에 근무하는 아메리꼬 말도나도(41), 이스마엘 곤잘레스(49) 씨가 3주간 방문한 구미 연수 중 매일신문사 주말팀과 함께 하는 소중한 여행 기회를 얻게 됐다.
둘은 지난주 김우중(대구가톨릭대 국제실무 외국어학부장) 스페인 문화원장으로부터 여행에 관한 정보를 듣고 흔쾌히 동참했으며 지난 27일 충북 영동 일대를 돌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것.
이번 여행은 대구여행자클럽(www.tour1144.com)에서 떠나는 충북 영동군 일대로 포도 및 국악축제.
김우중 원장의 승용차로 구미에서 출발, 추풍령 휴게소에서 관광버스에 탑승한 둘은 영동군 노근리 사건 피해현장을 깜짝 방문하고 놀랐다. 한국전쟁의 슬픈 역사는 들어봤지만 미군의 폭격에 의해 피난민, 주민들이 그렇게 많이 희생된 줄을 몰랐기 때문. 기찻길 아래 다리에는 곳곳에 발칸포를 쏜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방문지는 왕산악(거문고), 우륵(가야금)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는 이곳 출신 박연 선생의 호를 딴 난계 국악박물관. 조선시대 아악 이론을 집대성하고 아악기 제작, 궁중음악에 평생을 받친 박연을 기리기 위한 곳.
음악을 좋아하는 멕시코인 둘은 한국의 전통악기가 신기한 듯 직접 만져보고 두드려보기도 했다. 아메리꼬는 "멕시코에도 '마리아치'라는 전통악단이 있는데 바이올린, 트럼펫, 기타로 구성된다."며 "여자 친구 생일이나 집안 잔치 때 마리아치를 초청해 연주하면 모두에게 큰 기쁨"이라고 했다.
경돌 16개를 아래 위 두 단으로 매달아 두드리는 전통 가락 타악기 '편경'을 보자 3명이 함께 연주하는 멕시코 타악기 '마림바'를 떠올렸다. 둘은 국악기 제작소에 들러 아쟁을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고 악기 체험관에서 북을 두드리며 '베사메무쵸'를 부르기도 했다.
이스마엘은 "가슴속으로 은은하게 밀려드는 애절하고 부드러운 가락이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묘한 생각에 잠기게 한다."고 말했다.
난계 박연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난계사 사당에서는 한국 전통문양의 아름다운 색깔에 감탄했다. 건물 기둥위로 연두, 주황, 하늘, 파란, 흰색 등을 섞은 무늬가 눈길을 사로잡은 것. 아메리꼬는 "멕시코에도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Dia de los muertos)라는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한 날(11월12일)이 있다."며 "죽은 사람을 위해 음식을 차리고 기도하고 애도하는 걸 보니 한국과 멕시코는 비슷한 풍습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악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영동천변 포도 축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은 올갱이 국밥과 파전, 김치전 및 인삼 동동주. 처음 맛 본 한국의 토속 음식들이다. 하지만 매운 고추를 먹는 멕시코인답게 잘 먹는다. 동동주를 보며 멕시코에도 황토 색깔이 나는 '풀개(Pulgue)'라는 선인장 줄기, 잎 등을 갈아만든 전통주가 있다고 했다. 올갱이 국밥 역시 처음 맛보는데 손톱보다 작은 올갱이를 꺼내 신기한 듯 쳐다본 뒤 입으로 넣는다.
축제장에서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멕시코인들이 빠질 수 있으랴? 둘은 포도밟기 체험에 참가, 신나는 댄스경연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해 샤또마니 포도주 1병을 선물로 받았다. 한국의 한 가족과 벌어진 결승에선 멕시코 풍의 독특한 댄스를 선보여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 우승의 비결.
이 외에도 축제장에는 포도 낚시대회, 포도 호두과자, 포도 피부마사지, 네일아트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으며 멕시코인 둘에게는 모든 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행사였다. 이스마엘은 "서울, 부산, 경주 등에만 다니다 한국에 이런 신나는 축제가 있는 줄 몰랐다."며 "이런 한국이 부럽고 다시 오고 싶다."고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포도주를 숙성시키는 저장창고 '토굴'과 포도주 생산공장 '샤또 마니 와인 코리아'. 둘은 포도주 저장창고 토굴 체험 역시 처음이라며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탄약창고용 토굴을 유심히 살펴보며 '음식을 저장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고 했다.
포도주 생산공장에서는 자동화된 시스템 라인을 따라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며 인근 포도따기 체험장에서 5천 원을 내고 1인당 5송이를 따기도 했다. 둘은 "한국에서 이렇게 기쁜 날은 없었다."며 "그라시아스(Gracias.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