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스턴트 커피의 경제학'을 아세요?

입맛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습관은 무서운 법이다. 스타벅스 커피에서 촉발된 '된장녀' 논란으로 온통 시끌벅적하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커피는 '벽다방'(자동판매기) 커피나 커피믹스가 아닐까? 방금 뽑아낸 원두커피의 향에 취해 느긋한 한 때를 보내고 싶지만 눈치밥 먹는 직장인들에겐 커피가 아니라 그런 여유 자체가 사치스레 느껴진다.

인스턴트 커피가 몸에 좋으냐 나쁘냐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원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크림에 설탕까지 함께 마셔줘야 하는 커피 믹스에 대한 비토세력이 적잖은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인스턴트는 강자다.

인스턴트 커피는 볶은 커피를 뜨거운 물로 추출한 뒤 이를 다시 건조해 물만 타서 마실 수 있게 만든 커피를 말한다. 인스턴트커피는 SD커피(분무건조)와 FD커피(냉동건조)로 나뉜다. 인스턴트 커피는 국내에서 한 해 약 4천900㎏을 소비하고, 이는 우리나라 전체 커피시장의 80%에 해당한다. 얼마 전 신세계 이마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할인점에서 가장 많이 판매한 상품은 커피믹스였다. 이마트가 지난 1~5월 전국 79개 매장의 상품 판매동향을 분석한 결과, 커피믹스가 무려 433억 원 어치나 팔렸다. 뒤를 이어 봉지라면(421억 원), LCD TV(310억 원), PDP TV(304억 원), 팬티형 기저귀(292억 원) 등이 팔려나갔다. 개당 100원 남짓한 커피믹스가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상품 28만 가지 중에서 매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얼추 계산해 봐도 이마트에서만 5개월새 커피믹스 4억 3천300만 개가 팔렸다는 뜻이다. 1년치로 환산하면 대략 10억 개가 팔리는 셈. 가히 혀를 내두를 만한 수치다.

원두커피를 많이 마시다고 해서 선진국이라는 기준은 없지만 커피 시장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반대쪽에 있는 셈이다.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단의 대상은 결코 아니다. 다만 커피 마시는 습관이 다를 뿐. 아울러 처음 대하는 커피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인스턴트 액상커피이거나 집에서 간편하게 타 먹는 커피믹스, 또는 대학내 자판기이고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인스턴트 커피시장이 워낙 거대하다보니 외국보다 훨씬 다양한 인스턴트 제품을 맛 볼 수 있다. 세계 굴지의 인스턴트 커피 제조업체 대표가 신제품 홍보차 얼마 전 한국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커피시장의 인스턴트 제품 비중이 70% 이상이고, 이 가운데 커피믹스 비율이 절반 이상이다. 믹스커피 신제품의 한국시장 성공 여부가 전세계 시장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세계 믹스커피 시장에서 일종의 테스트 베드인 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웰빙'이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 커피믹스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결국 인스턴트 커피업계도 웰빙 마케팅을 강화하고 나섰다.

동서식품과 한국네슬레는 최근 칼로리는 낮추고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의 함량은 높인 '웰빙 커피믹스'를 잇따라 내놓았다. 동서식품은 3가지 웰빙 커피믹스를 출시했다. '맥심 웰빙 1/2칼로리'는 칼로리와 당분이 낮은 천연감미료와 저지방 크림 사용해 기존 커피믹스에 비해 칼로리는 1/2, 지방은 1/3 정도로 줄었다. 한 잔에 포함된 열량은 25k㎈ 정도. '맥심 웰빙 폴리페놀'은 항산화 물질로 알려진 폴리페놀 성분의 함량을 2배로 늘린 것이다. 또 '맥심 블랙 믹스'는 커피와 설탕만 들어있어 칼로리가 적고 깔끔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한국네슬레도 폴리페놀 함량이 일반 커피믹스의 2배인 '테이스터스 초이스 웰빙 커피'를 선보였다.

가격대도 천차만별이다. 물론 원두커피도 한 잔에 2천~3천 원짜리부터 한 잔에 1만 원을 훌쩍 넘는 고급 제품이 있지만 인스턴트에서도 가격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커피믹스는 개당 100원 남짓이지만 헤이즐넛향이 첨가된 신제품은 개당 350원을 웃돌고, 콜라겐이 함유된 기능성 커피는 개당 1천300원에 이른다. 13배 가량 가격 격차가 나는 셈.

커피믹스를 이용하더라도 물은 끓여야하고, 저어줄 스푼은 필요하다. 이왕이면 조금 더 귀찮아져서 더 풍부한 인스턴트 맛을 즐기면 어떨까? 커피 따로, 크림 따로, 설탕 따로 준비해두면 기호에 맞춰 다양한 맛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요즘 병 커피는 제조방법이 발달함에 따라 향까지 잡아내고 있다. 인스턴트 커피를 맛있게 타려면 100℃ 끓는 물보다 조금 식은 95℃ 내외의 물에 커피를 녹여 커피 향을 유지한 뒤 설탕을 먼저 넣어 85℃ 쯤으로 온도를 낮추고, 마지막으로 기호에 따라 크림을 넣으면 된다.

동아백화점 가공식품팀 이수원 과장은 "식품의 매출에서 커피는 라면과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으로 해마다 6~7% 정도의 매출 신장세를 나타내는 가장 인기있는 품목"이라며 "여름철에는 찬 물에도 잘 녹는 커피, 냉장 커피가 인기를 끌고, 전형적인 커피의 계절인 가을이 되면 커피믹스나 병 커피 매출이 늘어나는 등 연중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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