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안 1천리를 가다] 감포 '산 증인' 양무줄 옹

"90년 가까이 살면서 젊었을 때는 단거리 육상 선수로, 늙어서는 감포노인야구회에서 선수로 활동했어. 체육인으로 스포츠정신에 입각해 후회없이 살았다는데 큰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지."

한평생을 체육인으로 살아 온 경주 감포읍 양무줄(89) 할아버지. 양 할아버지는 전촌보통학교 4학년때 육상에 입문해 20대 초반까지 100, 200m 단거리 선수로 경주군 대표는 물론 경북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명성을 날렸다. 당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청년단을 조직하면서 한국인은 10여명만 엄선해 가입시키는데 양 씨를 '재능있고 신명 있는 청년'이라며 청년단에 가입시켜 체육부장으로 임명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 받았다.

태풍으로 집에 있던 운반선이 파손되자 서울의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평생을 감포에서 생활했다. 그는 감포에서의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어 '감포의 걸어다니는 사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감포 근·현대사의 산증인 이다.

할 줄 모르는 운동이 없을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인 양 할아버지는 60대 중반부터는 김종해(작고) 씨와 함께 감포노인야구회 창립에 산파역을 했다. "야구회가 23년 동안 운영되는 동안 거의 매일 야구를 하며 건강을 유지했고, 몇차례 방송을 타 유명인사가 됐다."며 "일본 야구회와 교류전 이야기가 오가다 성사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양할아버지는 "모두들 나이가 들면서 병들고 세상을 떠나면서 회원이 몇 명 남지 않자 결국 지난 6월 감포노인야구회가 해산됐다."며 지난 시절의 우승컵을 바라보며 아쉬워했다.회상에 젖었다.

김진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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