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법조비타민] ⑥관선변호사

대구지역 변호사들의 표현을 빌리면 요즘 전국 법원 분위기는 '엄동설한'이다. 법관들은 외부 접촉을 거의 차단해버렸다. 예전 같으면 몇 몇 친한 동료들끼리의 자리에 사법연수원 동기나 과거 동료였던 인연들을 내세우며 변호사들이 간혹 합석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근접을 못하게 한단다.

법관들끼리도 가능한한 사적인 자리는 멀리하고 있다. 재판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바로 구설수에 휘말리게 된다며 공식적인 업무 외는 대화도 제대로 나눌 수 없는 상황이다.

조관행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구속을 불러온 이번 법조비리 사태가 법조계에 미친 파장은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사법부의 자성과 대책 마련에도 불구하고 '관선변호'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분노를 느낀다. 법과 양심으로만 판결하는 줄 알았는데 극히 드물긴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확인하게 된 배신감이 오죽하랴.

관선변호란 판사가 소송 당사자의 부탁을 받고 동료 재판부에게 하는 일종의 청탁을 말한다. 일반인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선변호'에 빗대 생겨난 조어이다. 검찰에도 관선변호가 통용되는데 '전화변론'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용어는 지난 해 7월 모 부장판사가 후배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기록에 대한 세심한 검토'를 부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 사안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탓에 흐지부지 됐다가 이번에 차관급 고법부장이 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 의해 밝혀지면서 다시 회자(膾炙)되고 있다.

사실 법관들도 각종 인연에 매여 있는 인간인 이상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가족, 친지들의 일을 모른채 할 수 없고, 이 때문에 사실 관계를 좀 더 정확히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기록을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해달라'는 말을 동료 법관에게 하는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법관들은 이를 흘려 버린다고 한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당사자야 굉장한 고민 끝에 의사를 전달했겠지만 기록 검토와 재판 진행을 하다보면 진실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없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변론 결과가 어찌됐든 일부에 불과하다고 해도 관선변호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 국민들은 관선변호인의 '정확한 검토' 부탁 한마디가 수백 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보다 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단한다. 이는 심각한 사법불신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대구의 중견 변호사가 들려준 일화가 유독 새롭게 다가온다. 10여년 전 이야기이다. 모 영장전담 판사에게 한 선배 판사가 선처를 부탁했단다. 영장전담 판사는 "같은 판사이니 영장에 서명을 당신이 하시지요." 했다.(휴일이나 야간 영장 발부는 당직 판사가 한다)

선배 판사가 기겁을 하면서 "없던 일로 해달라."며 백배사죄했다고 한다. 국민들은 법원에 이런 판사들만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최정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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