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란직후의 대구모습 (대구이야기 36)
6.25 한 달 전부터 대구에 와 있던 방랑시인 공초 오상순(空超 吳相淳)은 마침 대구역전의 한 술집에서 6월24일 밤부터 25일 새벽까지 향토문우들과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새벽녘에 남침소식을 듣는 순간, 술이 확 깨더라고 했다. 이튿날 대구 거리에 벽보가 나붙고, 비상경계령이 내려지자, 그날 이후 공포와 의분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회고한 적 있다.
6월26일 "각자 동요하지 말고 직무에 충실 하라"는 조재천(曺在千)경북지사의 긴급담화가 나왔다. 도경국장이던 조재천은 다섯 달 전 앉은자리에서 일약 도지사로 대영전해 있었다. 이어, 27일에는 대구주둔 2613(방첩)부대장 명의로 "경거망동을 삼가 하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경고가 나왔다.
(1)일반은 동요 없이 군을 신뢰하고 생업에 종사하라. (2) 군의 명령지시에 절대 복종하라. (3)유언비어를 조작 내지 동조하지 말라. (4)이적행위를 한 자는 엄중 처단한다. (5)인적 물적 징용동원에 적극 협조하라. (6)집회와 흥행은 일체 금지한다. (7)기타 군 작전에 지장이 되는 일체의 비애국적 행동을 엄금한다.
이런 경고문과 때맞춰 경찰은 등화관제를 실시하기 시작했고, '흥행금지'란 경고조항에 주눅이 든 대구시내의 요정들은 일제히 휴업계를 내었다. 영화관문은 닫지 않았으나 손님이 뜸했고, 요란한 광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29일에는 대구경찰서장 명의로 유언비어유포자, 암략망동자, 북괴방송청취자 등 이적행위자는 엄중 처단한다는 경고가 나왔는데, 이는 이 시점에서 이적행위를 할 부류는 지하남로당원이 아닌 한, 보도연맹원 외엔 달리 없다는 예단에서 나온 조치였다. 결국 그동안의 보련조직이 치안당국의 위협과 강요에 의해 급조된 결과, 자칫 '트로이의 목마'가 될지 모른다는 속셈을 실토한 셈이었다.
위기를 절감한 경북보련측은 재빠른 '충성성명'부터 내 놓았다. 의심 가득한 경찰의 눈길을 우선 피하기위해서였다. "갱생의 기회를 준 국은에 보답하기 위해 '타공정신'을 살려 충성을 다 할 것을 삼천만 민족과 천신지신에 맹세 한다"는 것이 충성성명의 골자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련이 못 미더웠던 경찰은 7월1일 다시금 거센 경고담화를 내놓게 된다. 이번에는 아예 보련맹원들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내용이었다. "보련맹원들 가운데는 간혹 이중인격자가 가맹한 경우도 있다는 정보가 있는바, 아직도 자각을 못하고 잠복해 있다면 색출해서 엄벌에 처하겠다."는 경고였다. 아울러 "남침직후 38선 부근에서 보련맹원들이 천인공노할 보복만행을 저질렀다."는 사례까지 들었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이런 살벌한 경고에도 대다수의 보련맹원들은 극도로 움츠려들기만 했을 뿐, 뾰족한 방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하는 심정 못지않게, 당장 생업에 쫓겼던 탓이다. 날렵한 극소수 맹원들만이 몸을 숨겼을 뿐이다.
이날 이후 서울의 유학생과 군경가족 등 첫 피란민물결이 내려오자, 대구도 이제 숨 가쁜 전시도시가 완연했다. 그러자 조 경북지사는 7월2일 '전시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임시식량대책수립과 후방임전태세확립을 독려했고, 소진섭(蘇鎭燮)대구지검장은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을 들먹이며 이적행위자와 파렴치범은 극형에 처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엄포 덕분인지 시중의 쌀값이 잠시 내렸고, 수급도 원할 해졌다.
그러나 전황이 한층 위급해진 7월11일에는 마침내 비상계엄령이 내려졌고, 경남북계엄사령부 명의의 포고 1호가 나오면서, 대구는 단숨에 군법의 다스림을 받는 살벌한 '전투도시'로 변모했다. 7월16일, 대전에 피란해 있던 이승만 대통령이 대구로 밀려내려 오자, 어느새 대구는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풍전등화 대한민국'의 임시수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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