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 것과 합쳐 모두 25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재산을 가진 미국의 대표적 재벌의 한 사람인 윌리엄 코치가 미국의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의 이니셜이 담긴 1700년대 후반의 프랑스 보르도 와인 4병의 진위를 확인하는데 큰 관심을 보이며 거금을 투입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4일자에서 보도했다.
신문은 '와인 애호가가 논쟁의 병뚜껑을 열었다'는 제목의 심층보도 기사에서 무려 3만5천병의 와인을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코치가 문제의 보르도 와인 4병을 자신에게 넘긴 와인 판매상을 제소하는 한편 미연방수사국(FBI) 출신 인사와 와인 전문가 및 심지어 방사능 과학자까지 고용해 막대한 돈을 들이며 이들 와인의 진위 여부를 철저하게 캐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 작업에는 코치가 지난 87년 이들 와인 4병을 구입할 때 사용한 50만달러의 두 배 이상의 돈이 이미 들어간 상태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문에 따르면 이들 '제퍼슨 와인'은 지난 1985년 파리에서 발견된 후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그해 12월 포브스지를 만든 고 말콤 포브스에 의해 크리스티 경매에서 샤토 라피트가 1병에 15만6천달러에 팔렸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 와인 한병의 최고 경매 기록으로 유지되고 있다.
코치는 이미 사망한 신원을 밝힐 수 없는 사람이 보관하고 있던 제퍼슨 와인 4병을 독일의 세계적인 와인 중개상인 하디 로덴스톡을 통해 구입했다고 밝혔다. 코치는 사들인 와인들에 대한 진위 시비가 끊이지 않자 지난달 31일 로덴스톡을 뉴욕 법원에 제소했다.
코치가 뉴욕 법원에 제소한 당일 소프트웨어 재벌인 러셀 프레이도 샌프란시스코 법원에 역시 로덴스톡 소유의 보르도 와인을 자신에게 판매한 와인상을 제소해 가짜 명품와인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런 가운데 아버지로부터 포브스를 물려받은 크리스토퍼 포브스 역시 아버지가 산 제퍼슨 와인이 가짜인 것 같다고 밝혀 와인 경매업계를 바짝 긴장시켰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에 대해 오래된 명품 와인을 잘 찾아내기로 유명해 '와인업계의 인디애나 존스'란 애칭도 붙은 로덴스톡은 "제퍼슨이 주문했음을 입증하는 기록들이 있다"고 항변했다. 또 크리스티가 지난 6월 경매에 부치려다가 진품 여부에 시비가 걸려 취소한 1961년도 샤토 페트뤼스를 자신이 공급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미국 버지니아주 몬티첼로 소재 제퍼슨 저택의 운영권을 갖고 있는 비영리교육단체인 토머스 제퍼슨 기념사업재단측은 로덴스톡이 주장하는 와인 주문서에 의문을 제기했다.
재단측은 제퍼슨이 프랑스 대사로 근무할 당시 보르도 와인에 심취했던 것은 사실로 이 때문에 1787년에는 보르도로 직접 여행하기까지 했다면서 당시 샤토 오브리옹, 샤토 디캥과 샤토 마고 와인들을 사서 자신이 마시기도 하고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재단측은 제퍼슨이 지난 1790년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 보르도 와인들을 주문했다면서 그 기록들도 온존하게 보관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1985년 포브스가 산 1787년산 사토 라피트의 경우 어디에도 주문 기록이 없으며 제퍼슨이 1788년에 확보한 것으로 기록돼있는 1784년산 샤토 디캥 말고는 주문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코치는 제퍼슨 와인의 진위여부 식별을 위해 조사팀을 프랑스에 보내 프랑스 당국의 협조를 받도록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방사능 전문가로 하여금 코치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제퍼슨 와인들의 방사능 연대 측정도 하도록 했다.
방사능 전문가는 핵실험 낙진이 와인에 들어있는지 여부를 측정해 첫 핵실험이 이뤄진 1945년 이전에 생산된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45년 이전에 생산된 와인이라는 점을 확인했으나 제퍼슨 와인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에 따라 조사의 초점은 와인이 아닌 와인병 쪽으로 이동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이를 위해 유리전문기업인 코닝의 유리박물관도 동원됐다. 그러나 분석 결과 지난 1700년대에는 코치가 보관하고 있는 제퍼슨 와인의 병을 만들만한 기술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병 표면에 제퍼슨이란 이름 등을 새길만한 다이아몬드 고속절삭 기술은 한참 후에나 나왔다는 것이다.
신문은 로덴스톡이 뮌헨의 고급호텔에서 유명한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와 크리스티 와인경매 책임자 마이클 브로드벤트 등을 초빙해 명품와인 시음회를 몇년간 개최하는 등 와인업계에 군림해오다 일련의 가짜 시비에 휘말리게된 것도 충격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로덴스톡이 공급한 명품 와인 가운데 "코르크 마개가 교체된 것들도 여러개 있음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오래된 명품 와인의 경우 20-30년마다 와인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코르크 마개를 교체해야하는데 그 작업은 엄청난 기술과 신중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위 시비에 휘말려온 문제의 제퍼슨 와인 4병을 철통같은 보안 속에 보관하고 있는 코치는 여러 곳에 분산돼있는 자신의 와인 셀러에 들어있는 와인 가운데 아마도 200병의 명품이 가짜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와인 테이스팅이 까다롭기로 정평있는 코치는 또 자신만의 특이한 디캔팅(와인의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시기 전에 미리 따라서 공기와 접촉시키는 작업) 방법도 개발해냈다.
제퍼슨 와인 진위 시비가 이처럼 커지는 상황에서 가짜에 대한 우려가 와인업계에 확산되고 있다고 저널은 전했다. 1961년산 샤토 페트뤼스 경매 취소건이나 소프트웨어 재벌 프레이가 보유하고있던 명품 와인 가운데 일부가 가짜인 것으로 소더비측이 밝힌 것이 이런 예들이다.
크리스티 관계자는 "최근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 가짜 와인을 전보다 쉽게 가려낼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지난 2년 사이 이전 8년 동안보다 더 많은 가짜 와인을 골라낼 수 있었다"고 귀뜀했다.
그는 그러나 와인 소장자나 구입자들이 가짜 와인임이 확인돼도 이것이 바깥에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따라서 "문제가 생겨도 조용히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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