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일현의 교육 프리즘)언어폭력

과잉 체벌 문제가 지속적인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자녀를 둔 부모들이 착잡해 하고 있다. 그러나 체벌은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폭력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폭력은 한 개인의 인격을 파괴한다. 폭력 앞에서 가해자는 자신도 모르게 더욱 잔인한 수법을 사용하게 되고 피해자는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품위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둘 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문명사회에서는 고문을 반인간적인 범죄 행위로 금지하는 것이다.

물리적 폭력은 증거가 확실하게 남기 때문에 책임을 분명하게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언어폭력은 치밀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히기가 어렵다. 더구나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언어폭력의 심각성은 좀처럼 이슈화하지도 않는다. 체벌 그 아래에는 그것의 몇 배에 달하는 언어폭력이란 하부구조가 빙산의 밑둥치처럼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물리적 체벌에 분개하는 사람들은 언어폭력에 대해서도 당연히 그 문제점을 제기해야 한다.

생각해보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상회복이 가능한 일시적인 신체의 손상과 언어폭력으로 영혼 깊숙이 상처를 받아 생긴 심한 열등감 중 어느 쪽이 더 치명상인가를. 지속적인 언어폭력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직관력을 마비시키고 자율적인 학습의지를 꺾어버리며 세상에 대해 적개심을 품게 한다.

늘 자존심의 손상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는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일에서든 자신감을 가지기 어렵고 매사에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되는 언어폭력 속에서 자란 아이는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비정상적인 경쟁심을 가지기가 쉽다. 그런 아이는 남의 눈을 속이기 쉽고 속 깊은 내용보다는 형식과 겉모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언어폭력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특히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상당수의 부모들은 혹독한 질책과 별 생각 없이 내뱉는 비난이 학생의 온갖 가능성을 파괴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별로 심각하게 의식하지 않는다. 부모나 교사는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위기의식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불안감이나 위기의식의 조장만큼 심각한 언어폭력은 없다. 불안감은 인간의 모든 잠재능력을 파괴하고 영혼을 병들게 한다. 위기론 속엔 가학성의 잔인함이 깃들어 있다. 칭찬과 격려, 애정 어린 배려와 관용이 일상의 저변에 깔리고 말이 순화되면 체벌과 언어폭력의 유혹은 사라질 것이다.

윤일현 (교육평론가,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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